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칩 제조 부문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을 봐도 SK하이닉스(53%)와 삼성전자(38%) 등 국내 반도체 제조 기업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반도체 업계가 정부에 HBM 칩 제조의 기초가 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 대한 세제 혜택 같은 정책 지원을 요청하고 정부가 이를 검토하고 나선 데는 HBM의 초격차를 유지·확대해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HBM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시장조사 업체 욜그룹은 세계 HBM 시장 규모가 올해 141억 달러(약 19조 원)에서 2029년 377억 달러(약 52조 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HBM 수요가 확연히 늘어나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 수출이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호황을 보이는 것도 HBM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HBM 소부장 분야에서는 일본을 포함해 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현재 한국에서는 한미반도체를 필두로 세메스·한화정밀기계 등이 ‘열압착(TC) 본더’를 제작하고 있다. TC 본더는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HBM 제조 공정에서 필수적인 장비로 꼽힌다.
문제는 최신 제품이다. 12층 이상의 신형 HBM에서는 하이브리드 본더 같은 차세대 장비가 필요한데 이 분야에서는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이나 오스트리아 EVG 등의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국산 HBM용 소재나 장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R&D) 비용이 상당히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국가전략기술 지정을 통해 HBM 소부장을 지원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방안’에서도 반도체 R&D 세액공제 적용 범위 확대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HBM 소자 기술은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돼 있지만 HBM용 소재나 장비는 빠져 있다”며 “칩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부장도 국가전략기술에 추가돼야 한다는 게 업계 측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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