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실한 회사라고 굳게 믿었는데…. 자녀 학자금이나 수술 등에 대비해 한 푼 두 푼 모아온 돈이 날아간 것을 안 뒤로 저희는 완전히 정신이 나갔습니다.” (피해자 단체 대표인 50대 김 모 씨)
전국을 돌며 투자 설명회를 개최해 불과 5개월간 4500억 원이 넘는 돈을 굴린 유사 수신 업체 일당 120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 대부분이 금융사기에 취약한 중장년층으로 파악된 가운데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관련 신고가 접수되고 있어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도 있다.
5일 서울 동작경찰서(총경 김승혁)는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투자자 약 3만 6000명을 모집하고 4467억 원을 수신한 유사 수신 업체 ‘아도인터내셔널(이하 A사)’ 대표 이 모 씨와 계열사 관계자, 투자자 모집책 등 총 120명(구속 11명, 불구속 109명)을 사기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 일당이 소유하고 있던 현금 28억 원도 압수했으며 피의자 명의의 부동산 등 약 147억 원 역시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됐다.
A사 일당은 투자 설명회에서 산하 계열사 16곳과 코인 등에 투자할 것을 권유하고 ‘원금 보장은 물론 복리이자, 추천 수당, 직급 수당 등 명목으로 원금의 1.0~13.8%에 달하는 수익금을 받을 수 있다’고 현혹했다. 각 계열사의 사업 모델은 부동산·목재·인테리어·유통업 등으로 다양했다. 경찰은 “범행 초반에는 반품·땡처리 상품을 싸게 구입한 뒤 동남아에 팔면 큰 수익이 나니 구입 자금을 보태달라는 식으로 사기를 쳤다”면서 “이후 투자자가 모이자 정육점 사업, 제주도 리조트 건설 등 점점 다양한 분야로 계열사를 늘려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범행 과정에서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도페이’라는 앱을 직접 제작한 뒤 투자자들에게 설치해 간편하게 투자하라고 유도해 금융 기관이 이상거래 정황을 포착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투자금을 관리하는 전산실 장소도 주기적으로 옮기며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해왔다. 이밖에 한강 유람선에서 성대한 회사 창단식 파티를 열고 범행 초반에는 투자금 출금도 가능하도록 하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범행 후반에 접어들며 투자금 돌려 막기가 어려워지자 최후의 투자 아이템으로 ‘자체 개발 코인’까지 꺼내들었다. 이들은 지난해 6월께부터 설명회에서 ‘우리가 직접 개발한 코인을 구입하면 비트코인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며 투자자들을 대거 끌어들였다. 이후 ‘전산실이 해킹됐다’등의 핑계를 대다가 돌연 투자금 출금을 중단했다. 이렇게 편취한 투자금으로 사기 일당은 초호화 아파트에 거주하며 고급 수입 차량을 운행하는 등 사치를 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밀항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이 씨를 비롯해 계열사 대표 등 주범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검거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밖에 불법 수신 사이트 개발자나 도주 차량을 제공한 중고차 딜러, 계열사 직원 등을 포함한 100여 명의 경우 지난달 말 송치가 완료됐다.
이번 사건은 동작서가 전국 경찰서에 접수된 약 200여 건의 A사 관련 사기 사건을 병합한 뒤 지난해 8월부터 약 두 달 반 동안 집중 수사를 진행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기간 접수된 피해자만 2106명, 추정 피해 금액은 최소 490억 원이다. 경찰 관계자는 “여전히 전국적으로 관련 고발이 들어오고 있다”며 피해액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서 “온라인 메신저로 이뤄지는 주식 리딩방 사기와 달리 이번 사건은 오프라인 설명회와 지인 권유로 투자자를 모집한 결과 피해자 연령대도 50~70대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 중에는 노후자금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 총 1억 330만 원을 투자했다가 고스란히 잃게 된 70대 장애인 남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피해자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기존에 살던 반지하 빌라에 세를 놓고 나온 뒤 현재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고 있다.
경찰은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민생 침해 금융 범죄에 엄중히 대응하겠다”면서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하며 투자자를 모집하는 경우 사기 등 범죄일 가능성이 크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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