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중독, 성분명 처방으로 치료하자.”
일부 의사들에 대한 리베이트 수사가 본격화되자 최근 서울시약사회는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약사회는 “리베이트로 불필요하게 고가 약물이 처방되고 약물의 과잉 처방으로 이어져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성분명 처방은 환자가 처방약을 찾아 여러 약국을 방문하는 시간, 리베이트와 관련된 수사 및 재판, 불용 의약품 폐기 등의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의약품 시장은 의사가 동일 성분·효능을 가진 수많은 의약품 중 한 제약사의 상품을 특정해 처방하는 ‘상품명 처방’ 구조다. 제약 업계에서는 의사와의 친밀도가 처방 실적을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에 리베이트 같은 불법행위가 이뤄지기도 한다. 최근 발간된 보건복지부 용역 보고서 역시 고지혈증 등 일부 의약품이 해외 주요 국가 대비 10배 이상 비싼 원인으로 ‘친밀도 외에는 의약품 선택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약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성분명 처방’이 대안이 될지는 의문이다. 약사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의약품만 구비하면 의사에게 가던 리베이트가 약사로 옮겨갈 뿐 환자들이 겪는 불편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국에서 최대 100여 종에 달하는 동일 성분 의약품을 모두 보유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환자들의 선택권 보장이다. 성분·함량·제형이 동일하면서도 생물학적 동등성이 입증된 제네릭 의약품은 오리지널 약품과 같은 효능이 보장된다. 그럼에도 어떤 환자는 오래 사용된 오리지널 약품을 높이 평가해 돈을 더 주고 복용하고 싶어하고, 또 다른 환자는 같은 효능에 좋은 원료로 만들어진 저렴한 제네릭을 선호한다. 하지만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는 사실상 환자들의 선택권이 없다. 환자들이 오리지널 약품, 대형사 제네릭, 소형사 제네릭 등 가격군과 종류별로 원하는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리베이트가 근절되고 제약사들의 가격 경쟁도 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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