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를 둘러싼 정쟁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가계 통신비 정책에서 만큼은 여야가 이견 없는 입장을 냈다.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서둘러 폐지해 통신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자는 것이다. 이에 단통법 폐지가 재추진될 거란 기대가 나오지만 시장 상황이 과거와 달라져 별다른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할 거라는 관측도 상당하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24일부터 진행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의 단말기 구입 부담 경감을 위한 시장 경쟁 촉진과 이용자 권익 보호를 고려해 단통법 폐지 추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위원장으로 임명되면 통신사 간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면서 이용자 권익 등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국회의 논의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 달여 전인 지난달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가계 통신비가 월 평균 13만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최근 고가의 통신 기기 때문에 부담이 더 늘어났다”며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단통법을 신속하게 폐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통신 분야 공약으로 내걸고 올해 상반기 추진하다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보류됐던 일을 새 주무기관장 후보자뿐 아니라 거대 야당도 서둘러 재추진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단통법은 통신사 대리점이 기기값 할인용으로 지원할 수 있는 ‘추가지원금’을 ‘공시지원금’의 15% 이내로 제한한다. 단통법 폐지 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면 이 상한이 풀린다. 3사가 서로의 지원금 정책을 쉽게 파악하고 비슷하게 맞춰갈 수 있는 지원금 공시 제도도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대리점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추가지원금을 늘리는 상황도 기대 가능하다. 소비자는 통신사와 제조사가 협의해 정하는 공시지원금과 대리점이 추가로 주는 추가지원금을 합한 단말기 지원금만큼 기기값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기대의 전제는 통신 3사의 충분한 마케팅 투자다. 공시지원금은 물론 대리점의 추가지원금도 결국 3사의 마케팅비로 충당된다. 3사는 대리점에 신규 가입자 유치의 대가인 ‘판매수수료’와 이른바 ‘성지’로 불리는 일부 매장의 인센티브인 ‘판매장려금’을 주고 대리점은 이 돈의 일부를 추가지원금으로 활용한다.
수년 간의 마케팅비 추이를 보면 2017년 단통법 개정으로 공시지원금 상한이 풀린 후에도 3사는 마케팅 경쟁에 소극적이었다. 3사 합산 마케팅비는 2021년 약 8조 원에서 지난해 7조 7000억 원 수준으로 오히려 줄었고 올해도 비슷할 것으로 증권업계는 전망한다. 게다가 단통법 폐지나 다름없는 초과 지원금 제도인 전환지원금이 처음 도입된 올해 2분기에도 3사 합산 마케팅비는 지난해 동기 약 1조 9300억 원보다 적은 1조 9000억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통신사는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전환지원금으로 최대 50만 원의 추가 할인 혜택을 줄 수 있지만 실제 책정된 규모는 크지 않다. 수요가 몰리는 신제품들은 특히 혜택이 미미하다. ‘갤럭시Z플립6’와 ‘갤럭시Z폴드6’는 전환지원금이 아직 0원, 기존 8만 원까지라도 지원됐던 갤럭시S24 전환지원금도 이달 들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없앴다.
통신사들은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어 신규 가입이 크게 줄었고 중저가 요금제 확대 등으로 수익성까지 줄어 예전처럼 적극적 마케팅을 펼칠 상황이 못 된다는 입장이다. 3사가 롱텀에볼루션(LTE)을 막 상용화하며 신규 가입자를 선점해야 했던 까닭에 ‘갤럭시S3 대란’까지 불러일으켰던 2012년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가 단순히 단통법 폐지로 통신시장에 새로운 경쟁수단을 하나 더 던져주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통신사들이 실제로 이 수단을 활용할 여지를 키우도록 제4이동통신사와 알뜰폰(MVNO) 육성 등 종합적인 시장 경쟁 촉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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