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중 실수가 나오면 스스로 만회하려는 마음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고는 한다. 축구에서 페널티킥을 놓친 선수가 자책감에 속으로 울면서 뛴 끝에 결승골을 넣는 스토리는 흔하게 전해진다.
올림픽 단체전 3연패를 이룬 한국 남자 양궁은 ‘실수 뒤 매뉴얼’이 완전히 다르다. ‘놓친 점수를 만회하려 애쓰지 마라’ ‘부담은 동료들이 나눠가지는 것’ 등이다. 그렇게 나만큼 남을 믿고 경기한 대표팀은 전 경기를 일방적인 승리로 장식하고 편안하게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30일(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동생들과 금메달을 합작한 ‘맏형’ 김우진(32·청주시청)은 “실수하더라도 만회하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혼자서) 만회하려고 하면 안 된다’ ‘(다른 2명이 부담을) 나눠 가지면 된다’고 했어요. 앞 사람이 실수하면 뒷사람이 잘해주면 되고 그다음 사람이 더 잘해주면 된다고 얘기를 나눴고 경기장에서 제대로 나왔습니다.”
이날 한국은 8강에서 일본을 세트 점수 6대0으로 완파한 뒤 4강에서 중국을 5대1로 꺾었다. 결승에서 만난 홈 팀 프랑스도 5대1(57대57 59대58 59대56)로 어렵지 않게 이겼다. 3경기 동안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것.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와 2021년 도쿄 때도 단체전 금메달 멤버였던 김우진이 가장 부담스러운 3번 사수를 맡아 팀을 이끌었다. 남자 양궁 우승으로 한국 선수단은 대회 사흘째에 이미 목표인 금메달 5개를 달성했다.
동료에게 부담을 넘기는 게 모든 팀에 통하는 매뉴얼은 아니다. 셋 모두가 최고 수준으로 준비가 돼있고 훈련장 안팎에서 쌓은 신뢰가 바탕이 돼야만 가능한 전략이다. 김우진은 이번 대회 전까지 올림픽 금메달 2개와 아시안게임 금메달 3개, 세계선수권 9회 우승을 자랑한다. 김제덕(예천군청)은 이제 스무 살이지만 이미 도쿄 올림픽에서 2관왕(남자·혼성 단체)을 경험한 세계적 강자다. 이우석(27·코오롱)은 올림픽이 처음이지만 올해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쟁쟁한 실력자들을 제치고 3위에 올라 파리행 마지막 한자리를 차지했다.
2014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우석은 10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 꿈을 이뤘다. 어쩌면 ‘불운의 아이콘’으로 남을 뻔했던 선수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는 선발전 4위로 3명 안에 들지 못했고 도쿄 때는 선발전 통과를 눈앞에 뒀으나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미뤄지는 불운을 겪었다. 선발전은 다시 치러졌고 이우석은 탈락했다. 앞서 군인 신분으로 참가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김우진에게 밀려 은메달을 따면서 조기 전역이 불발됐다. 단체전 결승에서는 대만에 덜미를 잡혔다.
이우석은 갖은 역경을 겪으며 좌절하는 대신 길게 보는 법을 터득했다. 45세까지 국가대표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실타래를 풀어갔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이어 올해 파리행 티켓까지 끊은 그는 이날 프랑스와 결승에서 보란 듯 6발 모두를 10점에 꽂으며 그간의 아픔을 훌훌 털었다. 그는 도쿄 올림픽 탈락을 떠올리며 “파리에서 금메달을 딸 운명이었나 보다”고 했다.
3년 전 올림픽부터 ‘파이팅’ 기합으로 눈길을 끈 김제덕은 이번에도 쩌렁쩌렁한 기합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얼굴이 벌개질 때까지 파이팅을 외치다가도 시위를 당길 때는 분당심박수(bpm) 70대를 유지해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고교 졸업 후 예천군청 입단으로 사회인이 된 김제덕은 경북도립대에서 야간 과정으로 행정학도 공부한다.
셋은 이제 개인전 금메달의 강력한 경쟁자로 맞선다. 김우진과 이우석은 4강에서 만날 수 있고 김제덕은 결승에 가야 둘 중 한 명과 대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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