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공모 회사채가 시장에서 ‘완판’ 행렬을 이어온 가운데 사모 회사채 역시 발행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행 절차가 간편하고 연초 대비 발행금리도 낮아져 그동안 사모채를 찍지 않았던 기업들도 잇따라 사모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
12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HD현대케미칼은 이달 7일 사모채 300억 원을 발행했다. 4년 만기(4년물)에 표면금리는 연 4.9%다. 지난달 16일 4년물 500억 원(연 4.9%)을 찍은 지 약 3주 만이다.
HD현대케미칼은 원래 공모채 시장의 단골이다. 2월에도 2000억 원어치 공모채를 발행했다. 마지막 사모채 발행은 2019년이었는데 5년 만에 두 번에 걸쳐 800억 원을 사모 시장에서 조달한 것이다.
HD현대케미칼의 지난달 사모채 발행이 차환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발행은 차입 구조를 장기화하려는 목적이다. 올 6월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가 회사의 신용등급(A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자 조달 부담이 높은 공모채보다는 사모채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HD현대케미칼 관계자는 “우리 쪽에 투자하려는 개별 투자 수요가 있고 차입 구조 안정화라는 회사의 재무 정책과 맞아 조달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3월 신용등급이 ‘AA-’급으로 강등된 이마트(139480)도 이달 8일 7년물 사모채 500억 원을 연 3.9%에 발행했다. 이마트의 사모채 시장 복귀는 2019년 사모 신종자본증권(4000억 원) 이후 5년 만이다. 이마트는 올 2월 공모채 시장에서 2년물과 3년물을 조달했는데 사모채를 통해 차입 구조를 장기화한 것이다.
그동안 공모 시장을 찾았던 기업들이 속속들이 사모 시장을 찾으면서 사모채 발행량도 크게 늘었다. 올 들어 대기업(공시대상기업집단) 사모채 발행량은 이날까지 5조 6485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2023년과 2022년 누적 발행액은 각각 4조 9800억 원, 2022년 4조 3002억 원이었다.
증권신고서 제출, 기관투자가 수요예측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공모채와 달리 사모채는 발행 주관사(증권사)를 통해 투자자만 확보하면 돼 발행이 간편하다. 신용등급이 ‘A+’급 이하로 비우량하거나 업황이 부진해 미매각 또는 오버발행(민간 채권평가사가 평가한 회사채의 고유금리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발행하는 것) 우려가 있는 기업들이 평판 훼손 등을 피하기 위해 사모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금리 수준은 공모채보다 사모채가 더 높다.
실제 올 사모채 시장에서는 건설·유통·석유화학 등 업황이 부진한 기업들의 조달이 두드러졌다. 대부분 상반기 신용등급이나 등급 전망이 내려간 기업들이다. 특히 신세계건설(034300)의 경우 지난해 3월 공모채 수요예측 미매각 이후 줄곧 사모채 시장을 조달 창구로 이용했다. 올해 5월에는 6500억 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사모로 조달했다.
신용 채권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가 높다는 점, 채권금리 인하로 사모채 조달금리도 하향 추세를 보였다는 점 등도 이들 기업이 사모채 시장을 더욱 찾게 만드는 요인이다. 신세계건설이 지난달 29일 발행한 사모채 2년물 350억 원의 표면금리는 연 7.25%였는데 이는 올 1월 발행한 2년물 700억 원어치의 표면금리 연 7.5%보다 0.25%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4분기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 진입 전망이 바뀌지 않는 한 국내 채권 시장의 방향성도 기본적으로 강세(채권 가격 상승) 쪽”이라며 “강세 전망이 유효한 상황에서 신용 채권 수요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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