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투자자들이 발행 재개 두 달 만에 한국전력(015760)공사 채권 발행액이 4조 원을 넘긴 상황을 주시하는 것은 총 31조 원이 넘는 공사채 물량이 연내 회사채 시장 수급 전체를 흔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 들어 금리 인하 기대에 줄곧 강세를 보인 일반 회사채 가격이 한전채 등의 공급 물량에 밀려 곧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18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한전채 물량은 총 10조 2500억 원에 이른다. 만기 물량은 11월(3조 4200억 원)과 12월(3조 2500억 원)에 집중돼 있다.
채권 시장에서는 6월 말 한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2조 6567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해 차환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한전의 현금성 자산은 현재 유동금융자산까지 포함해도 총 5조 3695억 원에 불과하다.
2년물 기준 지난해 연 4%를 넘었던 발행 금리가 현재 연 3.3%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점도 한전이 채권 차환 발행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는 부분이다. 금리가 내려갈 수록 채권 발행 부담이 줄어들므로 한전 입장에서 현 시점은 차입 구조를 장기화하기에 적합한 시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전은 지난달 31일 5년물 채권을 2000억 원어치 발행하기도 했다. 한전이 5년물을 발행한 건 2022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한전의 수익성이 악화하는 점도 채권 발행의 유인으로 꼽고 있다. 한전의 연결 기준 2분기 영업이익은 1조 2503억 원이었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과 달러 강세 영향으로 지난해 3분기(1조 9966억 원)와 4분기(1조 9117억 원), 올 1분기(1조 2993억 원)보다도 이익 규모가 더 줄었다.
더욱이 올해 안에 만기를 맞는 우량 공사채 물량은 한전채에만 있지 않다. 한국주택금융공사(1조 2000억 원), 한국토지주택공사(8350억 원) 등 다음 달부터 연말까지 공사채(특수채) 만기 물량은 한전채 10조 2500억 원을 포함해 총 31조 457억 원에 달한다. 이 기간 은행채 만기 물량도 역대 최대 규모인 75조 4168억 원이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높은 공사채 발행이 늘어날 경우 다른 일반 회사채의 수요를 빨아들여 채권 가격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고개를 드는 가운데 채권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만 상승해 일반 기업체의 자금 조달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 회사들은 통상 상반기 보고서 제출이 마무리한 뒤 9월부터 회사채 발행을 재개하는데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일반 회사채 물량도 사상 최대 규모인 약 20조 2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채권시장팀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공사채는 3년 이상의 중장기물 발행비중이 높고 보험·연기금 등 장기 투자 기관의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회사채와 수요 구조가 상당히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우려는 여신전문금융사채 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 금리 간 차이) 확대를 통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후 ‘AA-급’ 3년물 기준 회사채 스프레드가 1bp(1bp=0.01%포인트) 내외의 약보합세를 보인 사이 여전채 스프레드는 5bp가량 벌어졌다. 여전채 스프레드가 확대되면 이를 발행하는 카드·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사의 자금 조달 부담은 더 증가하게 된다. 여전채 시장은 일반 회사채에 앞서 시장 수급 상황을 약 한 달 정도 먼저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9~10월 회사채 발행이 크게 증가하면 회사채 스프레드가 곧장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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