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스위스 무역 합의를 통해 최소 90일간 115%포인트의 관세를 상호 인하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미뤘던 주문을 재개하고 월가에서는 침체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다만 이번 조치가 인플레이션 상승이나 성장 둔화 등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에서 수입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기업들은 이날 미중 관세 협상 소식에 재고를 확보하고 나섰다. 미국의 소형 가전 제조 업체인 샤크닌자는 그동안 출고하지 못했던 커피머신과 슬러시메이커 등 수백 개의 상품이 담긴 컨테이너를 반출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90일 이후 관세가 다시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유예 기간 중국 수입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릭 바이어 화학물류협회 회장은 “회원사들이 4월 이전 재고를 쌓아두면서 현재는 창고에 물건이 쌓여 있는 상태지만 (재고 부족이 가시화할) 6월 중하순부터는 10% 미만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90일 유예 기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처럼 주문 열풍이 몰려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백악관은 14일부터 중국발 소액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의 120%에서 54%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소액 소포에 대한 관세를 120%에서 54%로 인하하고 최소 수수료는 100달러로 유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승인했다. 중국도 미 보잉기 인도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등 후속 조치를 내놨지만, 관영 매체들은 “희토류 수출통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단 교역 중단 위기를 넘기면서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도 낮아졌다는 평가다. 라이언 스윗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경기 침체 확률을 50%에서 35%로 낮췄다. 월가의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경기 침체 가능성을 당초 45%에서 35%로 낮췄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기존 60%에서 45%로 줄였으며 앞서 경기 침체 확률을 75%로 전망했던 저스틴 울퍼스 미시간대 교수는 전망치를 50%로 수정했다.
다만 성장 둔화나 인플레이션은 피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미국의 관세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최근 영국과의 협정, 중국과의 제네바협상 결과를 반영하면 미국의 실효 관세율이 직전 21.3%에서 13.7%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인 2.4%보다 10%포인트 이상 높고 191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13일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월 대비 0.2% 올라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3월(-0.1%)보다는 오름세를 나타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도 미중 무역 협상 합의에도 금리에 대한 관망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신호가 나왔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는 이날 “관세가 이번에 발표된 수준과 가깝게 계속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무역정책은 여전히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관세율은 연초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률 둔화를 포함한 경제 여파가 계속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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