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성의 세 시기(1905)’는 삶의 순환을 상징하는 서로 다른 세 연령대 여성들에 대한 장엄한 서사다. 이 인생의 서사에서 시간은 수직의 추락처럼 빠르게 흐른다. 눈 깜작할 사이에 추악한 나이 듦의 수렁에 빠져든다. 세 여성은 화폭의 중앙에 수직으로 배치된다. 배경은 어떤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우주적 질서의 적확한 추상적 표현이다. 구체적 사실과 서사, 추상과 구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정교하게 직조돼 있다.
구도는 명확하게 구분된 두 개의 시간대를 상징하는 두 개의 수직적 구조로 돼 있다. 아이와 젊은 여성의 시간대는 젊음의 상징인 장식 패턴들에 감정이 넘실대는 푸른 색조다. 반면 등이 잔뜩 굽은 노파는 정적인 데다 색조는 갈색의 주변을 어슬렁댄다. 시간이 땅에 한층 더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여아와 그녀의 젊은 엄마는 한 몸처럼 연결돼 있다. 모녀는 눈을 감은 채 푸르른 생을 음미한다. 그들의 다리를 투명한 파란색 천이 기념 리본처럼 감싸고 있다. 머리가 봄꽃들로 가득 뒤덮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인생의 절정은 단연 젊은 여성이다. 그녀의 밝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직각으로 대비되는 노파의 암갈색조를 띤 그것과 대비된다. 그렇다! 노화, 곧 시간의 파괴가 문제다. 노화의 흔적을 피할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없다. 처진 피부, 부어오른 배, 정맥이 불거진 손과 발. 특히 노파의 두 발은 다른 두 여성과 달리 드러나 있다. 그녀의 존재가 검정색으로 표현된 죽음과의 연대에 다가서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클림트는 오귀스트 로댕의 1885년 작 ‘늙은 창녀’에서 영감을 얻어 이 노파를 그렸다. ‘지옥의 문’의 왼쪽 기둥을 위해 제작된 로댕의 앙상한 노파는 죄와 시간의 파괴 사이의 도덕적 연결을 상징한다. 시간은 파괴한다. 하지만 인간은 파괴된 것에서도 파괴 이상의 것을, 곧 신의 섭리를, 진실을 발견하고 느낀다. 로댕에게는 ‘이것만이 강렬한 진실’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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