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남색 정장 차림에 목에는 사원증을 건 채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각종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밀집돼 있는 건물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오전 10시 알람이 울리자 직원들은 일제히 고객들에게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OOO 사무관입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나 성남 판교 IT 기업 직원의 일상이 아니다. 중국의 한 대도시에 위치한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모습이다. 비슷한 시기 정보통신업 정식 업체로 등록된 수도권의 한 로또 당첨 번호 사기 업체는 신입 직원들에게 4대 보험 가입을 진행했다.
사기의 기업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형법 제114조 ‘범죄 단체 등의 조직’ 혐의 검거 건수는 2021년 76건에서 지난해에는 154건으로 3년 만에 2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경찰 관계자는 “2013년 이후 발생한 범죄 단체의 조직적 범죄 대부분은 보이스피싱 등 사기”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사기 조직이 인공지능(AI) 기술을 갖춘 첨단 기업 형태로까지 진화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2025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기 조직들은 기업적 외형은 물론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리딩방 등 각 분야 전담 팀 세분화 등 내부적인 체계도 갖추고 있다. 성과급이나 휴가비, 각종 수당 등 등 임금체계가 마련된 것은 물론 내부 성 비위 사건 방지를 위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까지 진행하는 등 중견급 이상의 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일부 국내 대형 조직은 아예 정식 업체로 등록하고 직원들을 4대 보험에 가입시키며 수사기관의 감시를 피한다.
조직이 체계성을 갖춘 만큼 이른바 최고경영자(CEO)급인 총책에 대한 검거 난도도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 역할별 검거 인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 수뇌부 검거 건수는 420건으로 2023년 886건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 3월까지 검거된 수뇌부는 70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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