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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이도’의 활용법 다소 過하다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문체부·지자체, 한글 관련 단체 일제히

15일 ‘세종대왕 나신 날’ 대규모 행사

특수계급으로 왕조 유지 위기의식 가져

업적 감사, 계승에도 지나침은 피해야

15일 경복궁에서 진행된 ‘628돌 세종대왕 나신 날 기념행사’에서 용비어천가에서 유래한 ‘봉래의’가 공연되고 있다. 최수문기자




가히 ‘세종 이도(1397~1450)’의 전성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15일 ‘세종대왕 나신 날’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다. ‘세종대왕 나신 날’은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의 흥례문 광장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628돌 우리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나신 날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 청년교육단원 등 54명이 선보인 봉래의(鳳來儀)가 압권이었다. 이는 ‘용비어천가’의 가사에 맞춰 작곡한 음악과 궁중 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이날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 창제와 과학 기술의 발전, 정치·문화적 업적을 실현하며 일생을 헌신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구나 쉽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셨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든 위대한 지도자였다”, “굳은 신념과 의지로 결단을 내리신 용기와 백성을 향한 큰 사랑”, “우리는 세종대왕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등 최상급의 상찬을 이어갔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15일 ‘628돌 세종대왕 나신 날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체부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도 이날 참석해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강조하는 사법 접근성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이 약한 자를 품고 억울한 자를 일으켜 세우는 마지막 보루로서 작동하게 했다”, ”모든 법관들의 표상”, “사법부도 이런 정신을 계승해 최선을 다하겠다” 등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국가유산청은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 영릉(세종과 소헌왕후 릉)에서 ‘세종대왕 나신 날 628돌 기념 숭모제전’을 진행했다. 세종특별자치시청도 세종시 한솔동 한글사랑거리에서 ‘세종대왕 나신 날’ 행사를 개최했다. 이외에도 국립국어원과 국립한글박물관, 전국 22개 국어문화원, 지자체, 전 세계 세종학당 등 관련 기관들도 함께 국내외에서 ‘세종대왕 나신 날’을 기념하고 있다.

세종 이도에 대한 찬사급 언급은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수도를 아예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대통령선거 후보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국내외에서 세종학당은 한국어와 한글을 외국인에게 알리는 첨병이 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그의 동상이 떡 하니 세워져 있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대한민국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역대 ‘대왕’ 두 명 가운데 한 명이다.(다른 한 명은 광개토대왕이다.) 물론 여기서 ‘대왕’은 아주 뛰어나다는 의미이고 ‘황제보다 낮은 등급’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15일 경복궁에서 진행된 ‘628돌 세종대왕 나신 날 기념행사’의 부대행사로 세종 생일상 미니어처가 설치돼 있다. 최수문기자




그렇더라도 15일 행사에서 표어로 삼은 ‘우리 겨레의 스승’이라는 호칭(15일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을 포함해 그에 대한 격찬은 다소 과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는 없다. 현재 같은 어려운 시대 세종의 리더십과 인간미가 필요하다고 해도 세종 자체를 우상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의 업적에 감사하고 계승할 것은 계승하더라도 지나침은 피해야 한다.

과거 세종 이도가 놀라운 업적을 달성한 것은 기본 자질의 우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가 특수계급, 왕족이었고 또 결국 왕(임금)이 됐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업적을 많이 세웠다고 해도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자리다.

역사적으로 할아버지(이성계), 아버지(이방원) 등이 기반을 잘 닦아 준 도움도 받았다. 나름대로 능력자였던 세종 이도는 “고려가 망한 것을 봐라. 조선은 고려와 달라야 한다. 그래야 조선 왕조가 오래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백성들에게 자신이 ‘주인’이기도 한 조선 왕조 건국과 유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조선 중기 이후에 태어났다면 다른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백성들이 자유롭게 쓰고 읽기를 바라며 그가 창제했다는 훈민정음도 결국 조선 건국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취지도 있었다. 훈민정음으로 처음 만든 글이 ‘용비어천가’인 이유다. 훈민정음은 문자로서의 ‘한글’이다. 대단한 업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치 ‘한국어’를 만든 것처럼 굴 것까지는 없지 않나 한다.

15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모습. 세종대왕 동상 뒤로 ‘628돌 세종대왕 나신 날 기념행사’가 개최된 경복궁 광화문이 보인다. 오른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형 전광판에는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인 이유는 우리 겨레의 큰 스승인 세종이 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라는 글자가 송출되고 있다. 최수문기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이날 “당시 세종이 죄형법정주의를 선구적으로 실현했다”고 말했는데 물론 세종 이도 자신은 그런 의도가 있었을 수가 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두 번이나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등을 살해한 태종 이방원이고, 손자가 ‘폭군 중의 폭군’인 연산군 이융이라고 했을 때 역시 지나친 감이 있다. 전통시대 법은 왕 이외에 나머지 사람에게만 적용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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