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담은 개헌 공약을 발표했다. 또 국무총리는 국회 추천을 받도록 하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사용도 제한하는 권력 분산 방안도 포함시켰다. 이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개헌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후보는 18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개헌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며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도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 임명과 관련해서도 “국회 추천을 받아야만 국무총리를 임명할 수 있게 하자”면서 “대통령이 총리의 권한을 존중토록 하고, 총리로서 맡은 바 직무를 더 든든히 수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내내 민주당과 갈등 관계였던 검찰과 감사원에 대해서도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며 “감사원은 국회 소속으로 이관해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내년 지방선거나 늦어도 2028년 총선에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합의하자”고 제안했다.
이 후보가 공개한 개헌 공약은 대통령의 권한은 분산하되 책임은 강화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4년 연임제로 국민들이 정권을 중간 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결선투표제를 통해 대통령이 과반의 지지를 확보하게 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 주장에는 “국가 최종 책임자의 임기 문제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역사가, 국민이 준 기회라 할 수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개헌을) 하면 딱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는 2030년에 차차기 지방선거도 함께 치러지는 만큼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는 판단이다. 이 후보는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안정과 민생 회복”이라며 “일과 국민 중심으로 보면 다음 지선에 맞춰 개헌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부연했다.
이 후보의 이번 개헌 공약 발표를 두고 정치권에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가 12·3 비상계엄 이후 개헌에 침묵한데다, 통상적으로 정국 운영의 동력이 가장 높은 정권 초반에는 모슨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개헌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개헌을 돌파구로 삼았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앞두고서야 개헌 얘기를 꺼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2년차에 자체 개헌안을 공개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후보도 원래는 민주당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한 명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에도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및 책임총리제, 생명권·안전권·주거권 등의 새로운 기본권을 명문화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 또 민주당 대표가 된 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4년 중임제 개헌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하지만 이 후보는 탄핵 정국 이후 개헌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해왔다. 개헌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낙연 전 총리, 민주당 내 경선 주자들이 이 후보에게 개헌에 대한 입장을 거듭 물었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일축했다.
이처럼 개헌에 대한 언급을 피해온 이 후보가 이날 개헌 공약을 발표한 것은 5·18민주화운동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5·18 45주년을 맞아 광주·전남 지역의 숙원인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통제 권한을 강화하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겨냥한 항목도 포함시키면서 ‘내란 종식’이라는 지지층의 요구도 수용했다. 대통령이 비상명령이나 계엄을 선포하려면 사전에 국회에 통보하고 승인을 얻도록 하고, 대통령 본인과 직계가족의 부정부패·범죄 관련 법안에는 원천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후보는 이날 공개한 개헌 공약이 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 후보는 “우리 헌법상 개헌은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헌법 제128조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돼 있다. 특히 지난 대선 당시 공약인 ‘중임제’가 아닌 ‘연임제’로 바꾸면서 보수 진영 일각의 ‘독재’ 프레임을 방어하며 본인에 대한 중도층의 거부감을 줄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의 전제조건인 국민투표법 개정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이 후보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자”며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말씀드린 사항을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새로운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국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상욱 의원의 민주당 입당으로 국민의힘 의원 수가 107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개헌 저지선(재석 의원 3분의 1)은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상황에서 국회에 국무총리 추천권을 주고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이관하는 등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낮다. 검찰 권력을 약화하는 내용도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이 입법부와 행정부·사법부를 모두 장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민의힘은 이날 논평을 통해 “제왕적 권력을 실컷 누리겠다는 오만한 발상이자 장기 독재로 가겠다는 선포”라고 비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