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이 테더(USDT)나 유에스디코인(USDC) 같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통화 주권에 종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규율 법안을 사실상 통과시킨 만큼 한국도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본지 5월 21일자 1·4면 참조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화 스테이블코인 vs 달러 스테이블코인: 글로벌 통화 전쟁 승리 전략’ 정책 토론회에서 “지금 한국이 선택하지 않으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통화 주권이 종속될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미국 사업자가 스테이블코인을 독점하는 구조 속에서 금융위기 발생 시 글로벌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며 “한국이 자체 사업자를 두지 않으면 위험이 전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손을 놓고 있으면 결국 글로벌 위험 관리 주체를 해외에 넘기는 셈”이라며 “기술이나 금융을 넘어 국가 안보와 전략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자본 유출, 통화정책 약화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국부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서병윤 DSRV랩스 소장은 “이미 해외 고객이 있는 국내 쇼핑몰에서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받은 쇼핑몰 사장이 이를 다시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국부가 유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장점이 있는 K컬처와 결합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분석도 많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위원회 위원장인 민병덕 의원은 “(금융)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점인 만큼 역량을 집중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글로벌 기업이 이미 주도하고 있다고 후발 주자인 한국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초고속 인터넷망 투자를 반대한 논리와 동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도 “K콘텐츠, K게임 등과 결합하면 글로벌 결제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BTS 상품을 구매하는 해외 팬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한다면 통화영토 확장이자 디지털 한류의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정보기술(IT) 업체를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스피드가 중요한 만큼 기존 대형 플랫폼인 삼성이나 카카오·네이버·토스·쿠팡과의 협력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는 만큼 한국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민 의원은 “미 상원에서 지니어스법(스테이블코인법) 토론이 종결됐다”며 “한국으로 치면 필리버스터가 종결된 것으로 사실상 통과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미국은 앞질러 가고 있는데 (다른 대선후보가) 반크립토 얘기를 하면서 비판하는 게 현재 수준”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질서에 수동적 수용자로 머무를지 능동적 설계자로 도약할지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지급준비금 50억 원이면 누구나 KRWT, KRWC 이름으로 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며 “시장혼란과 사기피해가 속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