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해외 지출만 늘어나는 소비의 ‘역외 이동’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중 거주자의 카드 해외 사용실적’에 따르면 거주자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통해 해외에서 사용한 금액은 총 53억 5000만 달러(약 7조 4000억 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3.1% 증가한 수치다.
해외 카드 사용 증가세는 내국인 출국자 수 증가와 맞물려 있다. 올해 1분기 내국인 출국자 수는 779만 7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742만 5000명)보다 5% 이상 늘었다. 내국인 출국자 수는 지난해 2분기(659만 8000명)부터 3개 분기 연속 증가세다.
특히 엔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찾는 내국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 1분기 원·엔 환율은 평균 100엔당 953.65원으로 전년보다 6.4%가량 상승했지만 일본행 출국자는 242만 명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도리어 6.7% 증가했다. 전체 출국자의 약 3분의 1이 일본을 찾은 셈이다.
반면 국내 소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설 연휴와 임시공휴일이 겹치며 최장 6일간의 연휴가 이어졌지만 1분기 소매판매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고 서비스업 생산은 1% 가까이 줄었다. 통계청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국내 신용카드 사용액은 전년 동월 대비 17.2%나 감소했다. 국내 소비가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거주자의 해외 카드 사용금액은 217억 2000만 달러로 2023년(192억 2000만 달러)보다 13.0%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해외 카드 사용액은 다시 한 번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1분기 해외 카드 사용액은 직전 분기(56억 4000만 달러)보다 5.2% 감소했다. 이는 연말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형 할인 행사로 급증했던 온라인 해외직구 수요가 연초 들어 주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해외 직접구매액은 지난해 4분기 15억 9000만 달러에서 올 1분기 13억 5000만 달러로 15.3% 줄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물가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이상 해외로의 경제 누수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체감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본 등으로의 여행 수요가 이어지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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