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으로 금요일 오후,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직원 100여 명이 하루 아침에 해고 혹은 면직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후 4시에 "30분 안에 짐을 싸서 나가라"는 통보를 한 것인데요. 백악관 NSC는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최상위 컨트롤타워죠. 이 NSC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NSC 100여 명에 하루 아침 해고·면직 통보"
우선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은 23일(현지 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NSC 직원이 대규모로 해고 혹은 면직됐다고 보도했습니다. NSC 전체 직원 수는 180명 내외의 지원 인력을 포함해 395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조직의 4분의 1이 잘려나간 셈입니다. 통보를 받은 사람 중 대부분(90~95명)은 국무부·국방부·정보기관 등 다른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전문 인력입니다. 파견직은 희망에 따라 원소속기관으로 복귀할 수 있으며, 정무직 임명자들도 상당수가 정부 내 다른 직위로 이동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NSC 수석보좌관 브라이언 매코맥이 23일 오후 4시 이메일을 보내 30분 내에 책상 위의 소지품을 챙겨 백악관 옆에 있는 NSC 건물에서 나가라고 통보했다"고 전했습니다. 로이터는 "퇴임하는 직원들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NSC 관계자 수십명을 '숙청(purge)'했다"고 평가했습니다.
“NSC 대폭 줄이고 MAGA 충성파로”
사실 이번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긴 합니다. 앞서 마이크 왈츠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경질된 이후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직을 겸직하고 있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NSC의 업무를 기존의 '정책 조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단순 실행'으로 축소하고 인력도 감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 NSC 비서실장을 지낸 알렉산더 그레이도 최근 기고문에서 "행정 인력을 제외하고 NSC의 정책 인력을 아이젠하워 정부 수준인 60명 규모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왔죠.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NSC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파'에 속한 사람들로 재정비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습니다. 최근 왈츠 전 보좌관은 메시지 앱 '시그널'에 미 시사주간 디애틀랜틱 편집장을 실수로 초대하고 이 자리에서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 관련 군사 기밀을 논의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익 음모론자 로라 루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NSC 직원 중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건냈고 이후 NSC 고위직 인사 여러 명이 해고됐으며 결국 왈츠 전 보좌관도 경질됐죠. FT는 "이번 경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번 조치가 (NSC 내에서) MAGA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줄여 트럼프 대통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루머는 '북한 통'이자 쿠팡 워싱턴사무소 총괄 임원으로 재임한 경력이 있는 알렉스 웡 국가안보 부보좌관도 탐탁지 않게 봐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FT는 "웡이 이번 해고에 포함됐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보도했습니다.
국가 안보 정책, 숙의 없는 결정 가능성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로이터는 NSC의 최종 인원이 50명이 되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라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안보 정책과 관련한 내부 논쟁이 줄어들고 트럼프 대통령의 '감'에 의존한 정책 결정이 더욱 많아질 수 있습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들이 미국 행정부의 충분한 숙고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죠. 또 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첨단 기술과 국가안보 정책을 관할하는 NSC 내 대부분의 부서를 해체했습니다. 이 조직은 중국 군사 분야에 대한 수출 통제 정책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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