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디지털자산 산업 생태계를 공격적으로 키워나가면서 한국 역시 국가 차원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혁신 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비트와 빗썸 등 거래소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 국내 산업도 채굴과 보안, 인프라 등을 아우를 수 있도록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는 조언이 제기된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채굴부터 거래, 지급결제, 자산운용·투자, 보안까지 디지털자산 산업 분야별로 다양한 기업들이 생태계 전반의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급결제 분야에서는 글로벌 전자결제 기업 페이팔을 비롯해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e커머스 플랫폼 쇼피파이 등이 비트코인 등 디지털자산 기반 결제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산운용 부문에서는 블랙록과 피델리티 같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등 상품을 출시하며 시장을 선도 중이다.
거래소들도 단순히 거래 중개 기능을 넘어 벤처캐피털(VC)을 통한 스타트업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1·2위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크라켄이 대표적이다. 코인베이스벤처스는 2018년 설립 이후 인프라와 보안, 디파이(DeFi), 대체불가토큰(NFT), 커스터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수백 곳에 투자를 진행했다. 또 코인베이스의 운영 경험과 유통, 전략적 파트너십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창업자들을 지원 중이다. 2021년 출범한 크라켄벤처스 역시 투자와 기술 자문, 사업화 네트워크, 상장 연계 등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면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은 거래 위주로만 성장하면서 생태계 확장에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아직 디지털자산 관련 법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규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투자나 시도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거래소들까지 투자에 적극 뛰어들고 기술·네트워크·상장까지 지원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이는 산업 전반의 자생력을 키우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형 거래소가 생태계 확장을 주도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의 경우 규제 탓에 거래소들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분을 보유한 기업(특수관계인)이 발행한 디지털자산의 거래 지원(상장)을 하지 못한다. 메타 출신 개발자들이 참여해 주목받은 앱토스 코인은 바이낸스랩스와 코인베이스벤처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후에도 두 거래소에 상장돼 더욱 성장했지만 국내의 경우 이 같은 사례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국내에도 업비트·빗썸과 같이 충분한 자본력과 경험을 갖춘 세계적 거래소가 있지만 이 같은 규제 때문에 선뜻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조재우 한성대 블록체인연구소 교수는 “국내 업계에서 충분한 자본력과 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거래소 산업이 유일한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해 생태계 확장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이해 상충 문제도 충분히 고려돼야 하지만 내부통제 강화를 통해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자산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두고 생태계 전반에 걸친 혁신 기업 육성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이 ‘M7(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엔비디아·테슬라·메타)’ 기업을 중심으로 정보기술(IT) 혁신을 주도해온 것처럼 우리 역시 채굴·거래·보안·지급결제 등 디지털자산의 주요 분야에서 기업을 집중 육성해 국내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가상자산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처럼 거래소 기능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가가 나서 2030년까지 유니콘·강소기업·대기업 각 10곳씩 총 30곳의 디지털자산 혁신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자산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기본법 제정과 국가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 마련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백악관에 디지털자산 총책임자인 ‘크립토 차르’를 두고 디지털자산과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국가 주도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자산의 정의와 업 세분화, 진입 규제, 각종 규율 체계 등 산업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은 법 제정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 마련을 통해 체계적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민간도 이를 뒷받침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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