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책금융기관의 지역균형발전 의무를 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해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은행권 대출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방은 마땅한 대출처가 없어 과도한 정책자금 공급 시 나랏돈만 낭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형배 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의 설치법 제1조에 ‘지역균형개발 및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이들 국책금융기관의 설치법 제1조는 기관의 설립 목적을 담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표현을 삽입해 기관의 성격을 새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정책금융기관이 보다 능동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실정”이라며 “해당 기관들이 지역균형발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법 조항에 이를 명시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수도권 쏠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제는 균형발전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며 “서울에서 거리가 멀수록 재정 지원과 정책적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국내 기업대출 잔액은 1400조 2238억 원이다. 이 가운데 수도권(서울·경기·인천) 기업대출 잔액은 934조 3593억 원으로 전체의 66.7%에 이른다. 1년 전(66.5%)과 비교해 수도권 비중이 0.2%포인트 증가했다.
중소기업으로 범위를 좁혀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권의 지역별 중기대출 실적을 보면 전체 잔액 1081조 3988억 원 중 662조 4152억 원이 수도권 대출이다. 비중으로는 61.3%로 전년(60.8%) 대비 0.5%포인트 늘었다. 신보의 보증도 수도권 52.6%, 지방 47.4%로 수도권이 다소 많다. 법안 발의를 주도한 민형배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가 전국 226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한 지역균형발전 공약을 발표했고 이에 맞춰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로 법을 발의했다”며 “과거 21대 정무위원회에서 논의됐던 내용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국책금융기관들은 부담스러운 모양새다. 광주광역시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민 의원이 평소에도 지방 지원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온 만큼 대선 결과에 따라 정치권의 압력이 크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국책금융기관 설치법에 지역균형발전 항목을 넣으면 지방 대출 실적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경우 계속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관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더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장에서는 대출 수요자인 기업과 가계의 수도권 밀집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얘기가 많다. 지방은행과 상호금융권조차 지역에서 대출처를 찾지 못해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는 상황인데 국책금융기관에 지역 대출을 강화하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지방은행 연체율도 치솟고 있다. 전북은행의 3월 말 현재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59%로 1.5%를 훌쩍 뛰어넘는다. 제주은행(1.56%)과 부산은행(1.1%)도 1%를 웃돈다. 경남은행(0.82%)과 광주은행(0.79%)도 시중은행 대비 연체율이 높다.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지방 기업의 수요가 많지 않고 지역 금융사들도 연체가 십수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책금융기관이 억지로 이 자금을 늘리는 건 부실만 더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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