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리더'의 자리 대신 철저히 실익만 추구하며 '세계 1등 국가'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기조가 우리나라의 신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되, 유사 입장국들 및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27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분석했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경제통상 분야에서 중국의 협상을 통한 타협을 시도하는 반면 첨단기술·군사안보 분야에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를 들어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대중 수출통제, 투자 제한으로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제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축출하고 전략적 탈동조화(strategic decoupling)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저지하면서 동중국해·남중국해 등 해양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적 억지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 한국, 호주 등 아시아 동맹국들의 국방비 증액·군사적 기여와 역할 확대를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우선순위 조정, 아시아 지역 미군 전력의 재배치 등과 함께 향후 동맹국들에 동맹 비용 및 역할 재조정을 위한 협상 개시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견지해 온 글로벌 질서 주도 국가로서의 역할을 거부하고 협소한 범위에서 미국의 경제적·지정학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기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은 가치와 규범에 입각한 자유주의적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세력균형론에 입각한 현실주의적 외교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를 주창해 온 전통적인 '미국 우위론자들' 대신 글로벌 개입과 군사력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개입 자제론자들'과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조하는 '중국 견제 우선론자들'로 꾸려진 바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배경을 감안했을 때 트럼프 정부가 대중국 견제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은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일부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양자적 협력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국가는 트럼프 정부로부터 대부분 고율의 관세를 부과받아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에 대항해야 하는 중국 역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가운데 우리 정부도 트럼프 행정부와 전략적 공조를 강화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외교 접근법을 모색하고, 굳건한 한미동맹 협력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원기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한국에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다면 주한미군 역할 변경 및 재배치, 한국군 역할 확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전시작전권 환수 등 한반도 안보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들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북한의 위협, 동아시아 안보 등에 대해 우리의 전략적 시야를 넓히고 한국의 역할과 기여를 강화하겠다는 적극적 자세로 대응하는 것이 긴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본, 호주, 캐나다, 유럽 등 유사 입장국들과 다양한 형태의 소다자 협력을 강하고 인태지역 국가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한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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