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왔는데 올해는 볼 게 더 많네요.”
28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로즈가든에서 만난 60대 김미연 씨는 만개한 장미 옆에서 남편과 사진을 찍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부부처럼 이날 축제를 찾은 이들의 손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누군가는 꽃과 셀카를, 누군가는 꽃과 연인을, 누군가는 꽃과 차를 한 컷에 담았다.
올해 에버랜드 장미축제의 테마는 ‘로즈가든 로열 하이티’, 줄여서 ‘로로티’다. 봄마다 열리는 이 축제는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튤립이 물러난 자리, 차를 마시는 여우가 등장했다. 정원 속 장미 향기 사이 관람객은 티파티에 초대된 손님이 된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300만 송이 장미의 향기와 색채가 감각을 압도했다. 장미 정원은 비너스원, 미로원, 빅토리아원, 큐피드원 등 네 구역으로 나뉘고, 각각의 공간에는 키네틱 아트·AR 체험·미러룸 같은 감성 콘텐츠가 배치돼 있다.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 다리아 송이 그려낸 장미성(5m 높이)과, 그 위에 설치된 대형 사막여우 조형물은 축제의 상징처럼 정원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올해 축제의 상징은 단연 ‘도나 D. 로지’다. 에버랜드 마스코트인 사막여우 ‘도나’를 재해석한 이 캐릭터는 장미 정원의 수호자(가디언)이자, 장미 박사(로자리안), 그리고 티파티를 꿈꾸는 주최자(드리머)라는 설정이다. 정원 곳곳에 이 캐릭터를 활용한 조형물과 포토존, 굿즈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로로티 장미축제는 단순한 계절 이벤트가 아니다. 1985년 시작된 장미축제의 뿌리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직접 심은 3500그루의 장미에서 비롯됐다. 용인의 척박한 땅에 자연농원을 세우고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장미를 선택했다. 그는 생전에 “단순한 테마파크가 아니라 얼과 문화가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철학은 40년이 지난 지금 로즈가든이라는 브랜드로 남았다.
에버랜드는 2013년부터 자체 국산 장미인 ‘에버로즈’ 개발에 착수해 현재까지 40품종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현장에서는 ‘퍼퓸 에버스케이프’, ‘가든 에버스케이프’, ‘카니발 에버스케이프’ 등이 전시 중이다. 이중 ‘퍼퓸 에버스케이프’는 2022년 일본 기후 세계장미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일본 수출까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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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만큼 중요한 건 ‘맛’이다. 로즈가든 옆 ‘쿠치나마리오’ 레스토랑에선 장미를 테마로 한 애프터눈 티 세트를 운영 중이다. 장미 브라우니, 컵케이크, 로즈베리 아이스티 등으로 구성된 2단 디저트 플레이트는 미식과 감성이 만나는 경험을 제공한다. ‘로로티 하트 츄러스’, 장미 모양 굿즈(우산, 양말, 유리컵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관람객 구성도 달라졌다. 한때는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꽃을 즐기러 오는 50대 이상 관람객도 쉽게 눈에 띈다. 에버랜드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비어트랙션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바오패밀리’, ‘가든패스’ 등 자연 친화 콘텐츠에 이어, 로즈가든 역시 하나의 공간 브랜드로 확장 중이다.
배택영 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 부사장은 “사파리나 로스트밸리처럼 로즈가든도 에버랜드를 대표하는 복합 콘텐츠로 육성하겠다”며 “단순한 테마파크를 넘어 자연과 예술, 문화가 결합된 감성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40년 전 황무지에 심은 한 송이의 장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 콘텐츠가 됐다. 그리고 그 정원 안에서 한 마리의 사막여우가 손님을 향해 잔을 든다. “어서 오세요. 오늘의 티파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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