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해소 급물살을 타게 됐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시는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서로 “미쳐버렸다”, “공화당 의원들은 내게 줄서야 한다”는 등의 날선 비판을 주고 받으며 둘의 밀월 관계가 파국을 맞으면서다.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대표적 기업 CEO의 감정적 갈등이 시장에서는 위험 회피 심리가 확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앞으로 관세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5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08.0포인트(-0.25%) 하락한 4만2319.74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31.51포인트(-0.53%) 내린 5939.30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162.04포인트(-0.83%) 떨어진 1만9298.45에 장을 마감했다.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증시 마감 무렵 98.78로 전날(98.79)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전날 10bp(1bp=0.01%포인트) 이상의 큰 폭으로 하락했던 미국 국채 금리는 상승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bp 상승한 4.04%를 기록했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8bp 오른 4.887%에 거래됐다.
“머스크는 미쳐버렸다” vs “공화당 의원들 줄 잘서라”…파국이 된 브로맨스
이날 미국 주요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 CEO의 날선 공방으로 도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CEO에 대해 실망감과 비판을 표하자, 머스크 CEO가 자신의 소셜미디어(X)를 통해 반박과 비난을 돌려주고,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비난을 되돌려주는 패턴이 반복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머스크의 감세 법안 비판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앞서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DOGE 수장 임기 종료를 기념하는 고별식을 열어준 뒤 나흘 만인 지난 3일 “이 엄청나고 터무니없으며 낭비로 가득 찬 의회의 지출 법안은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글 등을 엑스에 올리며 맹공을 펼친 바 있다.
머스크 CEO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디어 질의응답이 계속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이를 반박했다. 감세안에 대해서는 “역겨운 특혜의 산더미”라고 했으며 자신의 지지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없었다며 “배은망덕하다”고 말했다. 머스크CEO는 보수 진영 인플루언서인 로라 루머가 “나는 트럼프 대통령 편을 들어야 할지 일론 편을 들어야 할지 묻는 의원들을 알고 있다”는 글을 올리자 답글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3.5년 남았지만, 나는 40년 넘게 주변에 있을 것”이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그저 미쳐버렸다”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절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론의 정부 보조금과 각종 정부 계약을 종료하는 것”이라며 사업적 보복을 시사했지만 머스크 CEO는 “스페이스X는 드래곤 우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되받았다. 드래곤 우주선은 스페이스X가 개발한 우주선으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인력과 화물을 수송한다. 스페이스X의 기술이 필요한 쪽은 트럼프 행정부라는 주장이다.
한 때 밀월 관계였던 두 사람의 관계 파탄으로 테슬라의 주가는 14.27% 급락했다. 한때 17% 이상 떨어진 273.21달러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시가총액도 1조 달러를 하회하며 9170억 달러가 됐다. 1520억 달러(약 206조원)라는 거액이 하루 새 증발했다. 아젠트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제드 엘러브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법안에는 전기차 크레딧(보조금) 종료 등 테슬라에 악영향을 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며 “일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 악화는 테슬라는 물론 머스크의 다른 회사들에도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은 이번 갈등으로 트럼프 대통령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운영하는 트럼프미디어앤드테크놀로지는 8.04% 하락했다.
트럼프-시진핑 전화통화 결국 성사…이달 중 미·중 정상회담 시사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전화 통화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이날 오전 “방금 시 주석과 매우 유익한 통화를 마쳤다”며 “최근 체결되고 합의된 무역 협정의 세부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는 대략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됐다”며 “양국 모두에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미국 측이 주목하던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대해 “희토류 제품의 복잡성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달 중 양 국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중 시 주석이 영부인(멜라니아 여사)과 나를 중국으로 초청했고 이를 수락했다”며 “양국의 (협상) 팀은 곧 장소를 정해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구체적인 협상 구성원으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거론했다. 두 사람 간 공식 전화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사흘 전인 올 1월 17일 이후 처음이다.
시장은 이같은 소식에 한 때 상승 영역에 진입하기도 했다. 다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두 나라가 실질적인 화해 무드를 조성할 수 있을지, 관세 정책의 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지 신중하게 지켜보는 분위기다. 인프라스트럭처캐피털의 CEO 제이 해트필드는 “두 정상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긍정적이지만 중국과의 협상은 인도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보다 훨씬 늦게 이루어질 것”이라며 “빠르게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블랙록 CEO “미국은 오판 중, 5개월 뒤 관세 영향 보게 될 것”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제 둔화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4월 미국 무역 적자는 사상 최대 월간 감소폭을 기록하며 616억 달러를 기록했다. 2023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다만 이는 미국 무역 수지 개선의 시작이라기 보다 관세에 대비해 급격히 늘었던 3월 수입이 줄어든 결과다. 4월 수입은 3510억 달러를 기록해 3월 대비 16%나 감소했다.
시장은 미국의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예상보다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미 노동부는 지난주(5월 25∼31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4만7000건으로 직전 주보다 8000건 늘었다고 밝혔다. 청구 건수는 지난해 10월 첫째 주간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3만5000건)도 웃돌았다. 통상 실업수당청구건수는 주간 단위 지표로 장기 추세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고용 이슈가 불거지지 않는 한 시장 심리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전날 ADP가 발표한 민간 고용이 이례적으로 부진한 증가세를 보였던 만큼 이날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뱅가드의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 조쉬 허트(Josh Hirt)는 “물류창고, 운송, 소매업 등 관세에 민감한 산업 부문은 여전히 ‘불확실성의 중간지대(purgatory)’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러한 단기적 불확실성이 고용을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이코노미스트인 토머스 사이먼스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찾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은 6일 발표될 노동부의 5월 고용보고서에 주목하고 있다. 다우존스의 전망치에 따르면 비농업부문일자리 증가는 전월 17만7000건에서 감소한 12만5000이 될 전망이다. 실업률은 4.2%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인플레이션을 경고했다. 그는 이날 한 행사에서 “미국 경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장 큰 것은 인플레이션”이라며 “관세가 부과된다면 5개월 후에 매우 높은 인플레이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잘못된 계산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5개월 동안 경제에 영향을 미칠 관세의 영향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도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며 금리 동결 장기화를 시사했다. 그는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현재 시점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향 위험이 크고, 고용과 생산량은 하향 위험이 있다고 본다”며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정책 금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조를 계속 지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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