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사이버 공격의 십자포화 속에 놓인 이유는 지정학적인 긴장과 해킹 기술 고도화 등 복합적 요인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선 지리적·사회문화적 인접국인 북한과 중국 해킹 조직의 사이버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는 2023년 공공 대상 사이버 공격의 80%를 북한 관련, 5%를 중국 관련으로 분석했다.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은 첨단 기술을 확보하고 외화를 벌기 위해 사이버 공격을 확대하고 있다.
8일 국가정보원 국가사이버안보센터에 따르면 북한 해킹조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점 사업인 ‘국방력 강화’와 ‘지방발전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방산·위성·반도체·건설 관련 기술 절취하는데 힘을 쏟았다. 무인기 관련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드론전문가 해킹도 병행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를 보건혁명 원년으로 선언한 후 의료분야 관련 대학교수, 의료기기 제조업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해킹이 대폭 증가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런 내용을 보고한 바 있다.
국제 정세가 혼란해지며 핵티비스트(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해커)의 공격도 늘고 있다. 친러시아 성향 해킹그룹은 지난해 11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환경부,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국민의힘, 한국전력 등 홈페이지에 디도스 공격을 가했다. 최근 친팔레스타인 무슬림 해킹조직 리퍼섹은 올해 3월 국세청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보호나라 등에 디도스 공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의 고도화로 사이버 공격 기술도 발전하며 해킹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 국가정보원, 안랩, SK쉴더스, 팔로알토네트웍스 등은 AI를 악용한 사이버 공격이 심화될 것으로 봤다. 사이버 범죄에 특화된 악성 AI 모델이 다크웹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사이버 위협도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사이버 공격 강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보보호 관련 예산은 되레 뒷걸음질치고 있다. 올해 해킹바이러스 대응체계 고도화 예산은 579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6.8% 줄었다. 정보보호 전문인력 양성 예산도 지난해 241억 원에서 올해 222억 원으로 8.1% 감소했다.
정보보호 생태계 활성화에 필요한 예산도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정부가 주도로 만든 국내 최초 보안 분야 펀드 ‘사이버보안펀드’ 예산이 대표적이다. 올해 이 펀드 예산은 100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50% 줄었다. 자금난을 겪는 중소 보안 기업들에 활력을 넣고 민간 분야의 정보보호 산업 육성에 힘을 주고자 조성된 펀드 예산마저 감소했다. 정보보호핵심원천기술개발 예산(993억 원)과 디지털 융합보안 기반 확충(82억 원)도 각각 7.7%, 21.2% 감소했다.
이에 이재명 정부가 사이버 보안 관련 예산을 파격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이버 위협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보안이 필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보안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며 “중소·중견 보안기업을 대상으로 한 세제 혜택 관련 법안도 조만간 발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관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정보보호는 국가정보원이 공공분야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민간 분야를 전담하고 있다. 대응 체계가 분리돼 있어 즉각적으로 일원화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혼선을 빚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2018년 국토안보부 산하에 설립된 사이버안보·인프라보호청(CISA)이 사이버 보안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다. 일본도 사이버보안 체계를 재정비하고 있다. 지난달 참의원(상원)에서 통과된 일명 ‘사이버 대응능력 강화법안’은 ‘사이버보안전략본부’의 본부장을 관방장관에서 총리로 격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이버보안 확보에 관한 사무를 주관하는 내각 사이버보안 담당관도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새 정부는 사이버 보안을 국가 안보와 산업 생존의 핵심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미국 CISA처럼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민간 전문가 중심의 사이버 보안 컨트롤타워를 시급히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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