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 사생활 보호에 극도로 민감한 요즘, 매일 초인종을 누르며 이 짧은 인사를 수십 번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통계조사원이다. 인사가 따뜻한 응대로 돌아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때로는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때로는 경계의 눈빛과 마주해야 한다. 통계조사의 목적을 설명하고 신분증·안내문과 공문을 제시해도 의심을 받거나 불청객처럼 인식되곤 한다. 그럴수록 조사는 설득이고 통계는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을 되새기며 조사원들은 마음을 다잡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안녕하세요, 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라고 환하게 인사하며 미용실 문을 열었다. “관심 없어요, 나가세요”라는 단호하고 거친 말투와 함께 거절 당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해 “사장님, 파마하러 왔어요”라고 말하며 얼른 의자에 앉았다. 머리를 말던 중 통계조사원임을 밝히고 조사 목적과 활용 사례를 차분히 설명했다. 갑자기 싸늘해진 공기 속에서 원장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득이나 가족 구성 같은 조사 결과는 경제·보건·복지 등 각종 지원 정책에 활용되는 통계로 만들어지고 개인 정보와 응답 내용은 철저히 보호된다는 조사원의 말에 시간이 지나며 원장님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국민 대표인 표본 가구로 선정된 원장님의 소중한 참여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살림살이를 파악할 수 있다며 설득을 계속하니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파마가 끝나갈 무렵 마침내 조사에 응하겠다고 했다. 이후 둘은 매달 만나는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이 사례는 최근 개그맨 김태균 씨와 통계청이 협업해 만든 통계조사원 인터뷰 영상으로도 소개돼 있다.
한 조사 대상 할아버지는 ”그런 것은 젊은 사람이나 하는 거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귀가 어둡고 발음이 어눌해 대화를 꺼리는 것처럼 보였다. 통계조사원은 할아버지에게 손나팔로 입 모양을 보여주며 왜 조사하는 건지, 뭘 여쭤보는지, 말씀하신 자료가 모여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어르신은 “내가 말해 줘야 우리 노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뭐가 필요한지 안다는 거냐”며 조사에 응했다. 조사가 끝나고 할아버지는 조사원의 가방에 귤 두 개를 쑥 넣어주며 오랜만에 말동무해 줘서 고맙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처럼 통계조사원들은 응답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약국에 다녀오고, 사진을 찍어드리고, 경조사를 함께하는 등 마음을 다하면 응답자들은 멀리 있는 가족보다 매달 만나는 조사원이 최고라고도 한다. 이런 공감의 순간들이 쌓여 비로소 정확한 통계가 완성된다.
통계조사원은 단순히 질문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전박대에도, 차가운 말에도, 그들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설득은 정성이 필요하고 정확한 통계는 공감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사람들이다. “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 이 인사 뒤에는 수많은 발걸음과 설득의 시간이 포함돼 있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 폭우,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의 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다. 문 너머에 있는 국민의 삶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국민의 목소리가 통계로 만들어져 더 나은 미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통계조사원이 문을 두드린다면 잠시만 마음을 열어 여러분의 삶을 들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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