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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나 잔디나 급하게 덤비면 100% 죽지요”

한국 10대 골프장 선정위원 릴레이 인터뷰

코스관리 독보적 명성 이혜원 ㈜산솔원 대표

현업 종사하며 공부…GCSAA 정회원 가입

“기후 변화 따른 잔디 교체, 신중한 접근 필요

섣부른 교체는 미적 측면과 만족도 마이너스

혼파나 더위 강한 한지형 잔디로 극복해야”

회사 앞 작은 정원에서 포즈를 취한 이혜원 대표.




경기 광주 곤지암 리조트로 향하는 진입로에서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뒤엔 아담한 산이 자리하고 있다. 소나무, 측백나무, 주목 등 침엽수 사이로 철쭉이 마침 붉은 꽃을 피웠다. 정답게 얘기 나누기 좋다는 인근의 화담(和談)숲이 부럽지 않은 이곳의 주인장은 이혜원 ㈜산솔원 대표다. 국내 골프코스 관리 분야에서 쌓은 독보적인 명성만큼 회사 조경도 멋스럽게 꾸민 그를 봄볕 따스한 날 만났다.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이 대표는 1988년 용평 골프클럽에 입사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 막 졸업하고 사실 뭘 알겠어요. 잔디 관련 책이 회사에 한 권 있기에 달달 외울 정도로 봤지요. 어느 날은 고참들이 병든 잔디를 보여주며 ‘너, 이거 뭔 줄 알아?’라며 테스트를 하더군요. 단번에 ‘녹병’이라고 맞혔죠. 영어로는 녹이 슨 것 같아서 ‘러스트 병’이라고 부른다고도 하고요.”

이 대표는 그 후로도 ‘잔디 공부’에 진심이었다. 학회 등이 있으면 열일을 제쳐두고 쫓아다녔다. “윗분들의 인복도 많았어요. 용평 다음에는 태영CC(현 블루원용인)에 있었는데 그때는 윤세영 창업회장님께서 등록금까지 다 대주신 덕분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거든요.” 2005년에는 국내에 여전히 10명 미만뿐인 미국골프코스관리자협회(GCSAA) 정회원도 됐다.

제주를 제외하고 국내 내륙 골프장 중 페어웨이에 벤트그래스를 처음 조성한 코스가 스카이72(현 원더클럽72)인데 그 과감한 아이디어를 낸 게 이 대표다. “당시만 해도 내륙에 벤트그래스를 심으면 모두 죽는다고 했어요. 근데 제가 영종도에 가서 잠을 자보니 여름에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서늘한 게 아니겠어요? 그 정도면 한지형 잔디 생육에 아주 좋은 조건이거든요. 제가 사업주께 ‘일부 죽을 순 있어도 1개월 안에 회복시킬 자신 있습니다. 절 믿고 하셔도 됩니다’ 했더니 그 자리에서 ‘그럼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탄생한 곳이 스카이72 하늘 코스였다. 업계에서는 사철 푸른 양탄자 같은 페어웨이에 ‘환상적이다’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스카이72가 퍼블릭 코스이면서도 회원제 못지않은 요금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도 벤트그래스 페어웨이의 역할이 컸다.

이 대표가 가장 오래 몸을 담은 골프장은 LG그룹 계열의 곤지암이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코스 관리를 했다. 산솔원을 차리고 외주 업체로 들어간 것이었지만 골프장에 상주하는 조건이었기에 사실상 곤지암 전담이었던 셈이다. 골프장뿐만 아니라 곤지암 리조트 관리, 화담숲과 이천 LG트윈스 퓨처스 리그 야구장 공사도 이 대표가 맡았다.



이 대표는 “대학 전공이 조경인데 사실 조경을 제대로 배운 건 곤지암에 있을 때다”라며 “특히 화담숲 공사를 하면서 가위질과 나무 자르는 것부터 시작해 다양한 관련 지식을 익혔다”고 했다. 화담숲을 정성스레 가꾼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직접 인부들한테 라면까지 끓여주시던 소탈하고 다정한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코스관리자가 골프를 치면 어떨까. “맨날 풀 뽑고 잔디 상태 살피니까 동반자들이 ‘골프에만 집중하면 지금보다 훨씬 잘 친 텐데’라고 하죠. 근데 사실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하하.”

최근에는 노 캐디와 야간 라운드가 느는 추세인데, 이 대표는 “밤에는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경우가 더 많고, 캐디가 없으면 그린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며 골프 문화가 한층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잔디 관리 관련 책을 보며 설명하고 있는 이혜원 대표.


지난해부터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잔디 교체가 국내 골프장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여름 혹서기에 한지형 잔디가 병에 걸리거나 죽는 비율이 늘자 많은 골프장들이 난지형 잔디로 대거 갈아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섣부른 잔디 교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는 “서로 다른 종자를 섞어서 뿌리는 혼파나 더위에 강한 한지형 잔디 종자를 찾아 극복하면 된다. 우리가 관리하는 충북 영동 일라이트 골프장도 한지형 잔디인데 멀쩡했다”며 “관리 편의 목적만으로 잔디를 교체를 하는 건 코스의 미적 측면이나 골퍼의 만족도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신 그는 과학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세심한 관리를 주문했다.

“잔디는 아기 다루듯이 정말 조심조심해야 해요. 특히 봄에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고 서둘러 에어레이션(통기) 작업을 하면 냉해의 우려가 있습니다. 한 번씩은 꼭 추워지거든요. 뭐든 잘하려는 욕심에 서두르면 절대 안 되지요. 조금 늦더라도 날씨나 생육 관련 데이터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여유 있게 대처해야 탈이 안 납니다. 골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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