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심리를 초기에 안정시켰다면 가계대출 급증과 주택가격 급등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을 것이란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금리 인하 기조 속에 부동산 시장의 과열 조짐이 다시 나타나는 만큼 당국이 거시건전성 정책을 강화해 기대심리를 선제적으로 억누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15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주택가격 기대심리의 특징과 시사점’에서 2020년 5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주택가격 기대심리가 ‘중립적 수준’에 머물렀다면 전국 주택가격 상승률은 실제 24.3%에서 절반 수준인 11.3%로 억제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7.6%포인트 증가한 대신 4.9%포인트로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연구는 한은 경제연구원 김우석 조사역, 황인도 실장, 이재원 원장 등이 참여했으며 매월 가계 대상으로 하는 한은의 주택가격전망CSI 데이터를 활용했다.
연구진은 주택가격 기대심리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면서도 한번 형성된 방향은 장기간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대심리를 초기 단계에서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기대심리는 실제 주택가격 변동보다 약 8개월 앞서 상승률과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대심리가 상승하면 실제 주택가격뿐 아니라 가계부채, 산업생산, 물가 등 주요 거시경제 변수도 동반 상승한다. 특히 3~4개월 후부터는 산업생산보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두드러져 기대심리 과열이 신용 팽창과 금융 불균형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조사역은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 주택 구매를 앞당기게 되고 이사나 인테리어 등으로 소비가 늘어난다"며 "주택 보유자들도 집값이 오른다는 믿음으로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이 실물경제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물가 안정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중앙은행의 정책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통화정책 완화 시 금리 인하는 기대심리를 자극하는데 거시건전성 정책이 함께 완화된 국면에서는 자극 효과가 더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규제가 강화된 경우 기대심리의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최근 주택가격CSI는 2월 99로 저점을 찍은 뒤 5월 111까지 상승했고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과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되는 상황이다. 주택시장 기대심리와 실물 지표 간 시차를 고려하면 거시건전성 대응이 늦어질 경우 가계대출이 들불처럼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때 한은은 현시점에서 필요한 거시건전성 정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김 조사역은 "한은이 주택가격이나 기대심리를 직접 타겟팅해 정책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인하기에는 거시건전성 정책이 도와줘야 기대심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주택 공급을 늘리고자 하는 신호를 주는 것도 기대심리 하락에 도움이 된다"며 "최근 금리인하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기대심리가 더 큰 폭으로 자극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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