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는 ‘독립문(獨立門)’이 있다. 지난 1898년에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서재필 등 독립협회 주도로 세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독립’하자는 독립문은 그 엄혹한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도 살아남았다. 단순한 운은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제가 독립문은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독립문의 ‘독립’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중국, 즉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때문에 독립문은 역대로 중국 사신을 맞던 ‘영은문(迎恩門)’을 허물고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다. 중국으로부터는 독립하고, 대신 일본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던 것이 나중에 ‘친일’ 행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독립’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됨을 알 수 있다.
‘독립(獨立)’이라는 말은 전통시대에도 있었다. 글자 그대로 ‘홀로 선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인 데 다만 과거 ‘독립’은 의미적으로 ‘고립’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같으면 ‘왕따’ 혹은 ‘소외’ 같은 식이다. 때문에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내지 못했다. 잘 사용되지도 않았다.
그것이 일변한 것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시기 서양 문명과 언어에 대해 수많은 번역어를 만들어낸 일본인들이 서양에서 들어온 영어 단어 ‘인디펜던스(independence)’의 번역어로 ‘독립’ 단어를 선택 하면서다. 한문에 익숙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뜻만 생각했는지 ‘인디펜던스’의 번역어로 즐겨 사용하면서 지금의 ‘독립’ 의미가 정착했다. 독립운동, 독립군, 독립기념관 등등.
‘독립’ 이야기를 새롭게 끄집어 낸 것은 국내 문화콘텐츠업계와 관련해서다. 문화콘텐츠 업계의 다양성과 관련해서다.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수현 국회의원실 주최로 ‘새로운 대한민국 2025 콘텐츠 미래포럼’이 열렸다. 이재명 정부 들어 콘텐츠산업 성장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정부 지원의 ‘팔길이 원칙’, 즉 지원하되 간섭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문화가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 등 인프라를 만들고 각종 규제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문화산업에 대한 직접 규제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패널들도 동의 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그럼에도 어려운 분야에 대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영상의 ‘독립영화’, 음악에서는 ‘인디밴드’, 또는 ‘인디게임’ 등이다. 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새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윤석열 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기는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독립영화’를 세금으로 지원하자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독립영화는 말 그대로 이런 저런 제한으로부터 독립된 영화가 아닌가. 정말 아닌가. 대부분 영화계에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독립영화’와 ‘중소형 영화’와 섞어 사용하는 경향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독립영화에서 ‘독립’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예술적 경향이 살아있는 작은 영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독립’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개념은 엷다. 그리고 혈세를 투입하는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음악에서 인디(독립)밴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본이나 정부로부터 완전한 ‘독립’ 주장도 없지는 않다.)
‘공짜 점심’은 없고 ‘남의 신세를 지으면 갚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개념을 다르게 사용하면서 공짜점심 비난까지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짜점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23년 말에 취임하면서 영화 업계와 많은 논의를 가졌는 데 유 장관도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독립영화면 정부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나중에 바뀌었다고 한다.
문제는 독립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 시장의 생태계다. 콘텐츠를 포함해서 전반적인 문화산업 성장과 시장 활성화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독점 혹은 빈익빈부익부다. 잘되는 쪽은 더 잘되고 안되는 쪽은 약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계에서는 수백, 수천억대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드라마가 시장을 장악하는 반면 작은 영상물들은 맥을 못추고 있다. 넷플릭스 같은 OTT 시대에는 더해진다. 이는 음악산업, 게임산업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문화콘텐츠 업계에 다양성을 확보할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형 콘텐츠를, 어느 정도는 정부의 노력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러한 대상이 독립영화나 인디밴드다. 이는 시장이, 거대 기업들이 하지 못하는 일이다. ‘독립’이냐 ‘인디’냐는 문제가 아니라 될 성 부른 중소형 기업과 분야가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논란이다. 혈세가 투입되는데 제한이 없을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이날 포럼에서도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다양성이 성장 가능성을 높인다. 최근 아이돌 음악을 보면 음악산업도 다양하지 않은 듯도 하다. 다양한 시장을 만드는데 정부 기여가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자유와 규제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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