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희 SK온 대표이사 사장이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선택과 집중’을 천명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업황 부진과 중국산 저가 공세 등에 배터리 가격·안전·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신기술 위주의 선별적 투자로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포석이다.
1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이 사장은 최근 대전 SK온 배터리연구원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고 연구개발(R&D) 4대 핵심 과제로 △셀투팩(CTP) △건식전극 공정 △반고체배터리 △열폭주 솔루션을 제시했다. SK온 기술의 산실인 배터리연구원에서 타운홀 미팅을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사장을 필두로 박기수 R&D본부장, 김도균 경영전략본부장 등 SK온 주요 임원과 R&D 인력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임직원에게 “시장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명한 전략 방향성을 수립하고, 전사적 R&D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며 “4대 핵심 추진 과제에 집중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과제 항목별로 보면 셀투팩과 건식 전극 공정은 가격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 CATL과 BYD 등 중국 업체들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대응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4월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308.5GWh) 가운데 CATL·BYD의 점유율은 55.4%로 지난해 동기보다 2.8%포인트 오른 반면 국내 배터리 3사(LG엔솔·삼성SDI·SK온)의 점유율은 4.6%포인트 내린 17.9%로 나타났다.
셀투팩과 건식 공정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셀투팩은 ‘셀-모듈-팩’으로 이어지는 배터리 구성에서 모듈을 건너뛰고 셀을 모아 팩에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부품 수를 줄이고 원가까지 절감할 수 있다. 추가 확보된 공간에 더 많은 셀을 넣어 에너지 밀도도 높이게 된다. 건식 공정은 배터리 양극·음극을 만드는 과정을 단순화해 기존 습식 공정 대비 전극 제조비를 30%까지 낮추는 ‘게임체임저’로 주목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온은 하반기 각 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속도전에 돌입한다.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5’에서 SK온의 셀투팩 기술을 접목한 에스팩 플러스(S-Pack+)를 선보인 데 이어 현재 일부 고객사와 공급을 논의 중인 단계로 전해졌다. 또 연말까지 배터리연구원에 건식 공정 파일럿 플랜트를 구축해 상품성을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건식 공정은 빠르면 2028년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고체 배터리와 열폭주 솔루션은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려는 SK온의 의지가 반영됐다. SK온은 배터리 양극과 음극 사이의 전해질을 ‘겔’ 형태로 대체한 반고체 배터리(고분자-산화물 복합계 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액체 전해질 배터리에서 발견된 화재·열전이·열폭주 위험을 덜기 위해서다. 반고체 배터리를 구현하면 배터리 안전성뿐만 아니라 에너지 밀도를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20% 이상 높일 것으로 분석된다.
SK온은 2028년 반고체 배터리 시제품 생산을 목표로 세웠다. 배터리연구원에 파일럿 플랜트를 세우고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시제품 생산 이후 고객사 검증 등을 거쳐 2029년께 상용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SK온이 주력하는 액침 냉각은 절연성 냉각 플루이드(액체와 기체 중간 성질의 물질)를 배터리 팩 내부에 순환시켜 열을 방출하는 시스템으로 온도 상승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SK온은 SK엔무브와 함께 이 기술을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할 방침이다.
/노해철 기자 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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