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구조 개편을 위한 전략으로 공개매수와 자사주 매입을 본격화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에서는 기업 체질 개선을 위한 수단보다는 경영권 방어 등 개별 이벤트성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일본 최대 통신사업 기업인 NTT(일본전신전화공사)는 지난달 상장 자회사인 NTT데이터를 2조 3700엔(약 18조 원)에 공개매수했다. NTT데이터를 완전 자회사해 인공지능(AI)·클라우드 역량을 통합한다는 취지다. 도요타자동차도 이달 6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그룹 지배구조 재편에 착수했다. 모태기업인 도요타자동직기를 인수해 비상장기업으로 전환한 뒤 투자와 배터리 개발 등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일본에서 최근 공개매수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도쿄증권거래소(TSE)의 일본 자본시장에 대한 구조 개혁과 자본 효율성 제고에 대한 정책이 자리한다. TSE는 2022년 시장 재편을 통해 주식시장을 프라임, 스탠더드, 그로스 3개로 나누고 프라임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에는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중심으로 자본 효율성 지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PBR이 1배 미만인 기업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개선 계획 공시를 요구하며 불이행 시 시장 강등까지 시사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자사주 활용, 자회사 흡수합병, 불필요한 사업부 매각 등을 통한 구조 개편에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 4월 한 달 동안 일본 기업이 발표한 자사주 매입 규모는 약 3조 8000엔(약 28조 원)으로 나타났다. 연초 누계 기준으로는 6조 9000엔(약 57조 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창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단순한 기업의 전략적 차원을 넘어 TSE가 주도하는 자본시장 구조 개혁 및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는 변화로 해석된다”며 “일본 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은 올 4월 일본의 주식과 채권을 합쳐 총 8조 2130억 엔(약 79조 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최대 규모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 효율성이나 주주 환원 측면에서 자사주가 활용되고 있기보다 경영권 방어나 단순 지분 확대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특히 공개매수를 통한 자발적 상장폐지 역시 공시 등 상장 유지 부담과 주주 환원 압력을 피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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