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13일 공모가 1만 800원으로 코스닥 시장에 신규 진입한 화학공학 기업 한텍은 이달 20일 3만 7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1주당 시장가치가 불과 3개월 사이 세 배 이상 뛴 것인데 상장 직후 유통 가능한 주식 물량이 29.7%에 달했음에도 견조한 상승 모멘텀이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주가 상승의 배경으로 기업공개(IPO) 당시 주가수익비율(PER)을 주목했다. 한텍은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PER 14.07배를 적용한 뒤 이를 43.0% 할인해 공모자금을 모았다. 코스닥 상장 기업의 평균 PER은 105배에 달하는데, 사실상 PER 8배를 적용해 증시에 오른 것이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신규 상장 기업 37곳 중 27곳(73.0%)은 공모가보다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증시에 새로 오른 기업 대다수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세가 반전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증시에 진입한 기업 50곳 중 36곳(72.0%)은 이달 20일 종가가 IPO 당시 공모가보다 낮다. 하락 비율은 △2023년 상반기(69.7%)·하반기(70.6%) △2024년 상반기(65.5%)에도 70%에 근접했다.
그동안 새내기주 주가가 상장 직후 빠르게 올랐다가 결국 공모가 아래로 떨어졌던 잔혹사를 깨고 올 들어서는 견고한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장 심사를 전담하는 한국거래소가 꾸준히 심사 기조를 강화해온 결과 공모주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래소 관계자는 “평년과 달리 신규 상장 기업의 주가 상승 모멘텀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5년 새내기주’는 주요 주주가 일정 기간 주식을 의무 보유하는 보호예수(락업) 기간이 지난 뒤에도 꾸준히 주가가 오르고 있다. 1월 상장한 미용 의료기기 기업 아스테라시스는 상장 직후 유통 가능한 주식 물량이 36.61%, 3개월 내 보호예수가 풀리는 물량이 17.38%였다. 나머지 46.01%는 6개월 이후 락업이 해제되지만 모두 최대주주 등이 가진 주식이어서 단기간 대량 처분이 어렵다. 아스테라시스 주가는 보호예수가 사실상 모두 풀린 4월 24일 9440원이었는데 이후에도 상승 추세를 이어가 20일 1만 2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아스테라시스 공모가는 4600원이다.
통상 시장에서는 새내기주 주가가 상장 직후 반짝 오른 뒤 점차 하락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받아들여졌다. 주요 변수로는 최대주주를 제외한 주요 주주의 지분 매도가 꼽혔다. 코스닥 상장사 한켐은 지난해 10월 공모가인 1만 8000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3만 2500원의 시초가로 증시에 올랐다. 하지만 상장 이전 지분을 매입한 재무적 투자자(FI) SBI인베스트먼트(상장 당시 지분율 3.22%)와 산은캐피탈(7.24%)이 유통 가능 물량을 빠르게 소진하면서 상장 한 달 후에는 주가가 9470원으로 곤두박질쳤다.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기업 대다수는 유사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통상 벤처캐피털(VC)이나 기관투자가 등이 확약하는 의무보유 기간은 3개월 이내다. 이를 감안해 올해 1월 1일~3월 20일 증시에 오른 기업의 성적을 살펴보면 21곳 중 15곳(71.4%)이 공모가보다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단기 차익 목적 매도 물량이 나와도 중장기적 상승 추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신규 상장 기업의 주관 업무를 전담하는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이런 강세의 배경으로 낮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측정을 꼽는다. 애초에 보수적으로 예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증시에 오르다보니 악재가 발생해도 공모가보다는 높은 주가를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올 들어 상장한 기업들의 기업가치 할인율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높아졌다. IPO 기업은 공모가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유사·동종기업군(피어그룹)을 선정한 후 PER 등을 일차적으로 활용해 1주당 평가가액을 구한다. 이후 평가가액을 일정 비율로 할인하는데 이 할인율이 높아지다보니 상장 때 공모가와 기업가치는 낮아지고 꾸준한 주가 상승 동력이 생길 수 있다.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평균 할인율은 지난해 하반기 23.8%였지만 올 상반기에는 41.6%로 껑충 뛰었다. 3월 증시에 입성한 코스피 상장사 서울보증보험도 할인율이 42.2%에 달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부실 상장’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당국의 심사가 강화되고 상장 포기 기업이 늘어났다"며 “이를 의식해 애초에 낮은 가격으로 증시에 진입하는 기업이 늘어난 것이 펀더멘털 강화의 근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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