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등 주요 경제 부처 장관의 인선이 지연되면서 국정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와 산업부 등은 새로 지명된 차관 체제로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 통상 협상에서 격에 맞는 카운터파트너가 필요해 인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부처 장관들은 신임 장관 지명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퇴임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24일 일각에서 제기되는 유임설에 대해 본지에 “교단으로 돌아갈 계획”이라며 “이미 서울대 국제대학원에 2학기 복직 신청도 해둔 상태”라고 말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유임된 데 이어 안 장관도 미국과 통상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유임될 수 있다는 관가 일각의 전망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안 장관은 이어 “미국과 관세 협상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새 인물이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라 속히 후임이 발표되기를 바란다”며 “정부가 바뀌고 나면 미국 쪽 카운터파트에서 나와 협상을 하지 않으려 해 진척을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장관 자리를 계속 유지하더라도 책임 있는 정책을 실행하기는 어려운 처지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 장관들은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전부 사표를 냈지만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장관들은 모두 반려 조치를 받았다.
특히 산업부는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조직개편 문제까지 맞물려 있어 조직 전체가 어수선한 상황이다. 안 장관은 “기후에너지부도 출범한다고 해서 내부가 복잡한 상황인데, 우리로서는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다 스톱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세종 관가에서는 환경부 신임 장관으로 3선 출신 에너지 전문가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명되자 산업부 에너지 기능이 환경부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기후에너지부가 출범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산업부뿐만 아니라 부동산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국토부도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박상우 장관이 교체되지 않고 있어 부동산 대책 등 굵직한 정책 현안을 펼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 부처의 한 국장급 관계자는 “아무리 물러날 사람이라고 해도 전임 장관이 했던 기조를 완전히 엎는 정책을 전임 장관에게 보고하기가 쉽지 않다”며 “그렇다고 정보를 차단할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1년 반 넘게 지속된 의료대란을 풀어야 하는 복지부도 보건의료 로드맵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차관이 과거 정부의 기조를 스스로 뒤엎는 정책을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와 비슷한 처지였던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일부 장관은 지명까지 2달 넘게 걸리는 등 혼선이 있었지만 김동연 전 부총리(현 경기도지사)는 11일 만에 지명돼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면서 혼란을 최소화했다”며 “이 대통령도 조직개편 부담이 있더라도 주요 포스트 인선은 속도를 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사상 처음으로 정권 교체기에 유임된 송미령 장관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송 장관은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쌀 의무 매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었는데, 새 정부에서 자신이 했던 거부권 건의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자기 부정적’ 정책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 부처의 한 과장급 관계자는 “아무리 영혼이 없는 게 관료라고 하지만 똑같은 상관에게 그동안의 논리를 뒤집어 보고를 하고 정반대 결론을 내리라고 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처 개편한 다음에 장관을 임명하는 게 맞지만 기존 장관 패싱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새 정부에서 사직을 받아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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