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32개 회원국들이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늘리겠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내놓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적으로 (나토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안보 위협 속에 미국을 붙잡기 위해 ‘국방비 증액’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동맹국에도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토 회원국들은 25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정상회의 이후 이 같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 부담을 늘려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 이번 성명의 궁극적인 취지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국방비 증액을 위해) 추가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명에 따른) 이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국들은 정상회의 전부터 잇따라 국방비 증액을 선언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전날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내각 회의에서 국방비를 지난해 520억 유로(약 82조 4100억 원)에서 올해 624억 유로(약 98조 9000억 원), 2029년에는 1529억 유로(약 242조 3900억 원)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올해 예산안과 중기 재정계획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올해 2.4%에서 2029년 3.5%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안보 관련 간접 비용(1.5%)을 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로 상향 조정된 나토의 새 국방비 목표(2035년까지 GDP 대비 5%)를 6년이나 앞당긴 셈이 된다.
하루 앞선 23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늘려 나토의 새 기준에 부합하겠다는 내용의 긴급 성명을 내놓았다. 그는 영국 국방비가 2027년 GDP 대비 최소 4.1%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의 유럽 침공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밀착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안보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국은 이날 미국 F-35A 전투기 12대를 구매하겠다고 밝혔는데, 영국 공군의 핵무기 운용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토 회원국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애’를 보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뤼터 사무총장은 정상회의 전 만찬장에서 “나토가 지난 10년 동안 방위비를 추가로 1조 달러 증액할 수 있었던 것은 친애하는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블룸버그통신은 “나토가 미국을 붙잡아두기 위해 아첨 공세를 펼쳤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헤이그에 도착 전까지만 해도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5조는 여러 정의가 있다”며 확답을 피했지만 회의 이후에는 “전적으로 그들(나토)과 함께할 것”이라며 비교적 우호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이 같은 움직임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 국방부는 최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에도 나토 회원국과 동일하게 새 국방비 목표를 적용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경우 올해 61조 2469억 원으로 GDP 대비 2.32%인 우리나라 국방비도 두 배 이상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나토-IP4(인도·태평양 4개국)’ 회동에 참석했다. 이 회동은 당초 참석하기로 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잇따라 불참하기로 하면서 고위급 회동으로 격하됐다. 미국 측은 회담 직전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통보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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