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동안 배당을 하지 못한 데다, 기업공개(IPO)도 진행치 못했습니다. 이를 주주들이 민·형사상 소송 등으로 문제 삼을 수 있을까요?”
지난 12일 기업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광장이 연 ‘누구를 위한 상법 개정인가’ 세미나.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Q&A에서 상법 개정 이후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상법 개정을 하더라도) 이사들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처벌되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여론이 좋지 않은 시기에 검찰이 기소할 가능성이 없는 지 등 소송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또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소액 주주들이 배임죄를 요술 방망이처럼 휘두를까 걱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상법 개정이라는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상법 개정안의 향후 시행 여부를 두고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경영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이사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해당 내용이 현실화될 경우 기업은 합병은 물론 신주 발행까지 기업이 경영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주주 이해 충돌 부분도 고려해 한다. 특히 기업 경영에 따른 주가 하락 등을 주주들이 이익 침해로 판단하면 이사들은 민형사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법 개정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합병이나 신주 발행, 분할 상장과 같은 핵심 경영 행위에서 ‘회사의 장기 전략’과 ‘일반 주주의 단기 이익’이 충돌할 여지가 곳곳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합병이 개별 주주의 이익 침해로 간주되거나, 낮은 발행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해 특정인에게 몰아주는 경우, 구(舊)주주들이 이익 침해로 판단, 손해배상 청구 등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박경균·원혜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도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에 폭넓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미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등에 규제 조항이 존재하거나 이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인 만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기업이 겪을 어려움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행 초기 다소 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원 변호사는 “주주 배정으로 신주를 발행할 때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자본지상법에서는 (실권주 발행을) 철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대주주에게 신주를 저가 발행하는 부분도 대법원 판례에서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회사 합병 때 (합병) 비율에 따른 불공정 논란이 민사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이 부분 역시 법·시행령 개정을 통해 규제가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대신 비상장사 주식의 경우 최대주주에 대한 저가 발행이 여전히 가능한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변호사도 “인적 분할로 지배 주주가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데 대한 비판이 많았다”면서도 “최근 규제 강화로 이 부분도 대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존 판례와 규제에도) 상법이 개정 될 경우 주주 이익이 침해된다고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은 존재한다”며 “그만큼 금융 당국의 상법 개정에 따른 가이드라인 제시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상법 개정에 대비해 “전담 조직을 구성하는 등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제시됐다.
‘경영 리스크 증가에 대비한 기업의 적정 방안’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김영정 광장 변호사는 상법이 개정될 경우 합병은 물론 인적·물적 분할과 신주 발행까지 주주 이익 배분이 얼마나 공평한 지 기업 리스크 조직이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경영 방향은 물론 사법 리스크를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이른바 지배·일반 주주 사이 이익 배분에 대한 공평 정도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회사 이익이 늘어난다는 가정하에 지배·일반 주주의 이익이 함께 늘면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며 “반면 지배·일반 주주의 이익이 줄거나 지배 주주만 증가한다면 사법 리스크 탓에 사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배 주주의 이익이 일반 주주보다 상대적으로 클 경우에는 소송 등 제기 여부가 다소 불투명하다”며 “지배 주주의 가족 등 특수 관계인의 이익이 증가할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가 △전담 조직 구성 △내부통제 기준 마련 △소통 강화 등 기업이 상법 개정에 대비한 내부 프로세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사 충실 업무를 전담하거나 이를 지원할 조직을 신설했다면 다음은 주주 이익 공평 대우 부분을 평가할 기준과 절차 등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주 이익 보호와 공평 대우 평가를 이사회 의결 사항에 의무화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 “홈페이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주주 소통 창구도 마련해야 한다”며 KB금융의 사례를 제시했다. KB금융은 4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개인 투자자 질문을 취합하고 설명회에서 구체적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김 변호사는 “과거에는 합병 등 사업 추진 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던 사안도 상법이 개정된 후에는 공평 대우 판단 등에서 180도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며 “주주 이익에 대한 프로세스 확립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민형사상 소송에 대한 근거 자료로서 충분한 대비책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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