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시장에서 규제 족쇄가 풀리자 본격적인 사업 확대에 나섰다. 시장에서 매입하는 중고차 연식을 10년까지로 늘려 충분한 매물을 확보한 뒤 판매 확대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미국 관세정책에 따른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 등의 어려운 여건을 고성장하는 중고차 시장에서의 입지 확대를 통해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29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는 중고차 매입 기준을 대폭 완화하며 매물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중고차를 매입할 때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차량 연식 및 주행거리 기준을 기존 8년 이내, 12만 ㎞ 미만에서 10년 이내, 15만 ㎞ 미만으로 각각 늘렸다. 현대차는 기준을 충족하고 중대한 결함이 없는 차량이라면 브랜드와 관계없이 매입하고 있다.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매입 차종도 다양화했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넥쏘 등 수소차도 중고차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매입·판매 대상에 전기차를 추가한 후 약 1년 3개월 만에 수소차까지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다만 현대차·제네시스를 제외한 다른 브랜드의 전기차나 택시, 영업용 화물차 등은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품질과 내구성이 높아지면서 10년 연식의 중고차를 선호하는 수요가 적지 않다”면서 “이번 기준 완화로 그동안 중고차 사업 확대의 걸림돌로 꼽혀온 매물 부족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중고차 사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는 신차 판매 부진과 미국의 수입차 관세 부과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자리한다. 내수 판매 및 수출 감소의 충격을 최근 성장세를 보이는 중고차 시장에서 상쇄한다는 판단이 깔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4월까지 국내 중고차 거래량은 77만 9752대로 신차 거래(55만 3392대)보다 40.9%가량 많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같은 기간 국내 중고차 수출 물량은 29만 6637대로 지난해 한 해(62만 6462대)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기아(000270) 등 대기업을 겨눈 ‘중고차 점유율 규제’가 완전히 풀린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2023년 10월 중고차 사업에 뛰어든 현대차·기아는 중소 사업자 보호를 이유로 각각 점유율 4.2%, 2.9%를 넘지 못하는 규제가 적용됐지만 지난달 1일부터는 이 같은 족쇄에서 벗어나게 됐다. 기아는 올 3월 사업 목적에 ‘부동산 개발업’을 추가해 중고차 매매 단지 확보에 나섰다.
현대차는 기존 고객의 ‘중고차 판매→신차 구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업 구조를 강화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고객이 타던 차량을 현대차 ‘인증 중고차’로 확보한 뒤 신차를 구입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구형 넥쏘를 처분한 뒤 신형 넥쏘(디 올 뉴 넥쏘)를 구입하는 고객은 차 값 30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확보된 중고차는 272개의 엄격한 품질 검사를 거쳐 개인 또는 중고차 딜러와 수출업자 등에 넘기고 수익을 남기게 된다. 개인 고객에게는 연식 5년 이내, 주행거리 10만 ㎞의 차량을, 중고차 사업자에는 이를 초과하는 연식과 주행거리의 차량을 판매한다.
전동화 전환 흐름에 따라 중고 전기차 시장도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기반의 전용 전기차는 지난달까지 전 세계에서 102만 4948대가 팔려 100만 대를 돌파했다. 2021년 2월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 출시 이후 4년 4개월 만의 기록이다. 현대차는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침에 따라 연식 2년이 넘은 전기차를 주로 매입해 상품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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