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수출 규모가 12조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빅파마와 초대형 계약이 잇따르면서 불과 반년 만에 작년 연간 기술수출 실적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신약개발 과정을 효율화하고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국내 기술이 양적·질적 측면에서 도약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비공개 계약을 제외하고 총 87억 6000만 달러(약 12조 723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50% 증가한 수치로 지난해 전체 연간 기술수출 규모인 61억 달러를 넘어섰다. 성과는 에이비엘바이오(298380), 알지노믹스, 아리바이오, 에이비온(203400), 올릭스(226950) 등 유망 바이오기업들이 주도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뇌혈관장벽(BBB) 셔틀 플랫폼 기반 면역항암 치료제 기술을 약 4조 1000억 원 규모로 수출했으며 알지노믹스는 리보핵산(RNA) 치료제 기술 플랫폼을 이전하며 약 1조 9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이 외에도 알테오젠(196170)이 약 1조 9553억 원, 에이비온이 약 1조 80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며 조 단위 거래가 줄을 이었다.
규모의 성장 뿐 아니라 계약의 질도 뚜렷이 개선됐다. 올해 상반기 기술수출의 건당 평균 계약 금액은 약 1조 3414억 원으로 2023년(약 5297억 원), 2024년(약 5580억 원)과 비교해 최대 153% 증가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글로벌 상위 20위권 빅파마와의 거래 비중은 전체의 44%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며 크게 높아졌다. 일라이 릴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아스트라제네카 자회사 메드이뮨 등이 주요 계약 상대방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13%(MSD, 다이이찌산쿄), 2023년 20%(노바티스, BMS, 얀센, 아스텔라스), 2022년 18%(사노피, 암젠, 산도즈)와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계약 건수보다 중요한 건 계약 금액”이라며 “글로벌 빅파마들이 향후 시장을 주도할 신규 모달리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한국의 기술력이 그 흐름 속에서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인력, 경험이 풍부한 빅파마로의 기술수출은 최종 개발 가능성이 높은 계약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계약금을 넘어 임상 개발에 따른 단계별 마일스톤과 판매 로열티 등 장기적인 수익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과거 국내 기업이 외국 중소 바이오텍에 기술을 수출했다가 상대 기업의 자금난이나 전략 변화로 파이프라인이 폐기되거나 반환되는 일이 잦았다”며 “빅파마와의 계약은 이런 리스크가 적고 시장에서는 해당 기술이 검증됐다고 인식돼 추가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수출된 기술 중 플랫폼 기술이 전체의 30%(3건)를 차지하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꿔주는 알테오젠의 ‘ALT-B4’,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는 에이비엘바이오의 BBB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 RNA 편집 기술 기반의 알지노믹스 ‘트랜스-스플라이싱 리보자임’이 대표적이다. 특히 알테오젠의 ALT-B4는 올해 계약까지 포함해 해당 기술로만 누적수출 금액이 9조 원을 돌파했다.
국내 바이오텍 기술 계약 중 플랫폼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전체 기술수출 중 플랫폼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6%(4건), 2023년 20%(4건), 2022년 18%(3건)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단일 후보물질과 달리 플랫폼 기술은 기술의 사용 권리를 사가는 것으로 여러 회사로 수출이 가능한 게 장점"이라며 "국내 플랫폼 기술이 정교화되며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과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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