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관광산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외개방의 포문을 다시 열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30일 ‘KDI 북한경제리뷰’에 따르면 북한은 2023년 8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관광법을 새롭게 채택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국 단위 관광산업의 제도화를 본격 추진 중이다. 과거 금강산이나 경제특구에 국한됐던 제한적 관광을 일반법의 틀 안에서 제도화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 및 체제 결속 전략의 핵심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용우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에 따르면 관광법에는 국내 관광 활성화, 국제 관광 확대, 관광객 편의 보장, 생태환경 보호 등의 원칙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일부 지역에 국한됐던 관광 개발 방식을 전국적 체계로 확장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양덕온천, 삼지연시 등 주요 지역을 전략적 관광 거점으로 지정하고 직접 개발을 지시해왔다. 특히 지난 5월에는 원산갈마지구에 대해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법적·제도적 안정성을 부여했고 이 지구는 이달 중 공식 개장을 앞두고 있다.
북한이 관광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심각한 외화 부족과 저성장 극복에 대한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2023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3.1%를 기록하며 3년 만에 플러스로 전환됐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중화학공업 및 건설 부문의 일시적 반등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국제제재와 원유 수입 제한 속에서 관광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외화를 확보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로 간주되고 있다.
북한은 실제로 관광을 통해 적지 않은 외화를 벌어들인 바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북한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약 35만 명, 관련 수입은 1억 7500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금강산을 연결하는 관광 벨트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관광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명시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관광정책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바운드 관광과 주민 대상 국내 관광의 ‘투 트랙’ 구조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관광과 관련해선 지난해부터 러시아인 단체 관광을 재개하며 단계적 확대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 연해주와 관광협약을 맺고 블라디보스토크~평양 항공편과 여객 열차를 운행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 관광객 수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북한을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러시아인은 약 880명으로 집계됐다.
중국인 대상 관광은 아직 재개되지 않았지만,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관광 교류 재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과거 중국 관광객 유치로 연간 24만~27만명의 외국인을 끌어들인 바 있으며, 관광수입의 80% 이상이 중국에 의존했던 구조였다. 최근에는 중국 여행사들의 나선특구 현지 실사 방문이 이어지고 있어 단체 관광 재개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편 북한은 내국인 대상 관광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주민들의 ‘보유 현금’을 유통시키고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광이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은 정권은 평양 시내 관광 프로그램을 비롯해 지방 단위 복합문화시설, 유원지, 항공·승마 체험장 등을 확충하며 관광과 지역 개발을 연계한 '지방발전 20×10 정책'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평양관광대학과 지방 사범대학에 관광학부를 설치해 관광 전문 인력 양성도 병행 중이다.
다만 관광산업 확대는 북한 체제의 가장 큰 약점인 외부 정보 유입이라는 딜레마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실제 지난 2월 서방 관광객이 나선특구를 다녀간 뒤 SNS에 “가난을 숨기지 않는다”, “화장실 사용조차 가이드 허락이 필요하다”는 후기를 올리자 북한 당국은 관광을 전격 중단한 바 있다. 북한은 주민과 외국인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군중신고법 등 각종 통제 장치를 마련해왔지만, 외국인 유입과 정보 유출을 완전히 차단하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북한 관광의 실질적 확대를 위해선 근본적으로 교통·숙박 등 관광 인프라 확충과 함께,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한 통제 전략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김정은 정권이 강조하는 관광산업이 체제 선전도구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경제성과로 연결되기 위해선 보다 유연한 대외정책 전환과 국제 신뢰 회복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KDI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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