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프 투어의 ‘2인 1조’ 대회는 선수들 사이에 보너스로 통한다. 코스 안에서 사실상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 맞는 동료와 즐겁게 경기할 수 있는데, 우승하면 두둑한 상금과 함께 투어 2년 시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한국 시간)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CC(파70)에서 펼쳐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다우 챔피언십(총상금 330만 달러)에서는 한국의 임진희(27)·이소미(26)와 미국의 렉시 톰프슨, 메건 캉이 연장 승부를 벌였다.
톰프슨은 지난 시즌 뒤 ‘절반의 은퇴’를 선언했지만 투어 통산 11승의 기량이 죽지 않았음을 미국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캉은 2023년 CPKC 여자오픈 연장전에서 고진영을 누르고 라오스 몽족 출신 첫 우승의 역사를 쓴 선수. 하지만 올 들어 라운드당 퍼트 수 전체 145위(30.77개)로 심각한 퍼트 부진에 시달리고 있어 이번 대회를 터닝 포인트로 삼으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할 만했다.
하지만 절박함은 임진희와 이소미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각각 6승과 5승을 올리고 지난해 미국 무대에 진출했지만 단맛보다 쓴맛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던 둘이다. 임진희는 지난해 신인상 포인트 2위에 올랐지만 최근 2주 연속 컷 탈락의 쓴잔을 들었고 이소미도 올해 톱10 겨우 세 번으로 여전히 높은 투어의 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둘은 메인 스폰서 없이 외롭게 활동하는 기간도 함께 겪었다. 4월에 임진희는 새 스폰서를 구해 신한금융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지만 이소미는 아직도 모자 정면이 비어 있다.
둘은 작정하고 샷과 퍼트에 절박함을 녹여냈다. 18번 홀(파3·144야드)에서 톰프슨의 중거리 버디 퍼트가 나오면서 마음이 급해진 쪽은 세 홀 남기고 1타 뒤진 임진희·이소미였지만 17번 홀(파4)에서 기어이 20언더파 260타 동타를 만들었다. 이소미가 3m쯤 되는 버디 퍼트를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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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라운드는 포볼(각자 볼 치기) 방식으로 치러졌고 18번 홀에서 진행된 연장은 포섬(번갈아 치기)이었다.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4라운드를 출발해 버디 8개로 8타를 줄인 임진희·이소미다. 톰프슨·캉은 10타나 줄였다.
연장에서 이소미의 티샷은 톰프슨의 티샷보다 핀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불리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임진희의 퍼트가 한 건 해줬다. 3m에 가까운 버디 퍼트를 넣은 것. 코너에 몰린 캉의 1.5m 버디 퍼트가 왼쪽으로 빗나가면서 팀명이 ‘섬소녀’인 임진희와 이소미는 비로소 데뷔 첫 우승 포옹을 했다. 임진희는 제주, 이소미는 완도 출신이다.
LPGA 투어 유일의 2인 1조 경기인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 우승은 올해가 처음이다. 올해 한국 선수의 우승은 김아림·김효주·유해란에 이어 4승째로 늘었다.
임진희는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함께여서 해냈고 내년에도 같이하고 싶다”고 했다. 이소미는 “둘 다 지난해 힘든 루키 시즌을 보내면서 LPGA가 만만찮은 곳임을 깨달았다. 그랬던 둘이 이렇게 힘을 합쳐 우승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둘은 각각 상금 40만 2691달러(약 5억 4000만 원)씩을 벌었다. 이소미는 시즌 상금 12위, 임진희는 상금 20위로 껑충 뛰었다. 무엇보다 향후 2년간 시드 걱정 없이 투어를 뛸 수 있게 됐다는 게 값지다.
톰프슨은 연장전 전적 6전 전패의 불운을 이어갔다. 선두와 2타 차의 공동 4위로 출발한 ‘장타 듀엣’ 박성현·윤이나는 2타밖에 줄이지 못해 13언더파 공동 18위로 밀렸다. 박성현은 6년 만의 톱10, 신인 윤이나는 데뷔 첫 톱10을 눈앞에 뒀으나 아쉽게 이루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 랭킹 상위 25명 중 11명만 출전했다. 상당수 톱 랭커는 7월 10일 프랑스에서 시작될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을 대비해 휴식하거나 다른 일정을 소화했다. 김효주와 최혜진은 3~6일 스폰서 대회인 KLPGA 투어 롯데 오픈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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