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 등 저부가가치 산업의 비중이 높고 의료·법률 등 고부가 산업은 진입 규제가 지나치게 높아 자본 투입을 통한 규모화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평가 및 정책적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미국(100·2021년)을 기준으로 할 때 51.1에 불과하다. OECD 평균(59.9)은 물론 독일(59.2)과 일본(56)에도 뒤처진다.
낮은 서비스업 생산성은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민간 서비스업은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4%, 취업자 수의 65%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지만 1인당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의 40%에 불과하다. 같은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제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은은 “서비스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과 직영 프랜차이즈화 등 기업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노동생산성 20년째 제자리…직영 프랜차이즈화·서비스발전법 추진해야
컴포즈커피는 2014년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한 커피 체인 브랜드다. 저가 커피 전략으로 10년 만에 매장을 2500개 이상으로 늘리면서 커피 체인점 순위 3위까지 올랐고 창립 10년 만인 지난해 필리핀 최대 외식 기업인 졸리비그룹에 4700억 원에 매각됐다.
영세 커피 자영업자들이 원자재 가격 및 부대 비용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폐업 행렬이 이어지는 것과 달리 컴포즈커피는 기업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다.
한국은행이 3일 서비스업 생산성 개선을 위해 자영업자들의 구조조정 및 기업화를 주문한 배경에는 이 같은 구조적 원인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서비스산업은 저부가가치 산업인 영세 음식점업 비중이 크고 생산성도 낮아 성장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비스산업은 양적으로는 팽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4%를 차지하고 또 취업자 중 65%가 서비스업에서 일한다.
반면 질적 수준은 높아지지 못했다. 국내 서비스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의 39.7%에 그친다. 2005년 처음으로 40%대로 내려온 뒤 20년째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생산성이 더 악화됐다. 금융, 보험, 정보통신, 전문 과학기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은 비대면 수요 확대, 디지털 전환 등에 힘입어 일시적으로 개선됐다가 2022년 이후 하락 전환했다. 최근에는 팬데믹 이전 장기 추세를
10%가량 밑돌고 있다.
도소매, 숙박 음식, 운수 창고 등 저부가가치 부문의 생산성도 팬데믹 충격 후 전반적으로 하락했고 현재도 과거 추세를 약 7% 하회하고 있다.
미국의 전체 노동생산성은 팬데믹 이후 연평균 2.0% 증가했는데 서비스산업 생산성이 높아진 영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한은은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경우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에서는 양질의 일자리 기반이 취약해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의 60%가 저부가가치 서비스에 종사하고 이 가운데 73%가 1인 영업장이었다. 정선영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은 “초기 자본이 적게 드는 업종에 1인 또는 가족 운영 사업체가 몰리면서 영세 자영업자들만의 진입·퇴출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회전문식 경쟁’이 초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낙 규모가 작고 영세하다 보니 민간의 자본 투자가 막히는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비스업 투자율은 2000년 26%에서 2022년 18%로 감소했다. 주식시장 내 시가총액은 제조업의 절반 수준이다. 또 고부가 서비스 기업 매출의 98%가 내수에 집중되고 해외 진출 기업은 2%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등 해외 빅테크들이 적극적으로 서비스 수출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은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부가가치 서비스업 부문에서는 생계형·비자발적 자영업자들이 중견기업 이상의 정규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법인화 및 직영 프랜차이즈화를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자본 축적과 사업의 규모화가 가능하도록 기업들의 자본 접근성을 제고하고 창업·폐업 등 산업 내 순환을 가능하게 할 맞춤형 금융 및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망 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와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11년 처음으로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제정해 범부처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규제 완화를 위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제조업의 강점을 토대로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반 산업 서비스로 전환해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구상이다. 한은 관계자는 “과거 제조업 보조 역할에 머물던 서비스업이 팬데믹 이후 글로벌 교역재로 부상했다”며 “특히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은 제조업 강점을 기반으로 서비스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빅테크인 애플과 엔비디아 등의 사례에서 보듯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을 융합해 시너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는 새로운 시장 창출 기회를 확대시킨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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