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문턱 강화와 자사주 소각 확대가 맞물리면서 국내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의 자본금이 10년 만에 줄어들었다. 한국거래소가 내년부터 상장 퇴출 요건을 대폭 강화하며 ‘좀비기업’ 솎아내기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기업들도 주주 환원 강화 차원에서 잇따라 자기주식을 대규모로 소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재명 새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 등의 정책까지 더해지면 자본금 감소가 자본 효율성 개선을 위한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들의 자본금(월말 기준)은 올해 3월 154조 681억 원에서 4월 153조 6997억 원, 5월 153조 3480억 원으로 두 달 연속 감소했다. 6월에 소폭 반등했지만 지난해 12월까지 이어지던 증가세가 뚜렷하게 둔화되는 모습이다. 상장 자본금이 두 달 연속 줄어든 것은 2015년 8~9월(7월 115조 4359억 원→8월 115조 3210억 원→9월 114조 370억 원) 이후 9년 7개월 만이다. 그간 상장 자본금은 매년 적게는 3조 원, 많게는 5조 원씩 꾸준히 증가해왔다.
2015년에는 대외 위기로 인한 시장 충격과 유동성 경색의 영향이 컸다. 중국 위안화 절하 사태와 메르스 확산, 8월 24일 ‘블랙먼데이’ 여파로 공모 시장이 얼어붙었고 STX엔진·STX중공업 등 STX 그룹 계열사의 대규모 감자가 자본금을 크게 줄였다.
이번 자본금 감소는 정책적인 변화에서 비롯된 흐름이라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금융 당국이 시동을 걸어온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이 실효성을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장 자본금이 줄었다는 것은 주식 수가 줄고 자본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자본 효율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순이익을 자본총계로 나눈 값으로, 자본금이 줄면 동일한 이익을 올릴 때 ROE는 높아진다. 즉 기업이 무분별한 증자 없이 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자본금은 자사주 소각, 감자, 신규상장 감소, 상장폐지 등을 통해 줄어들 수 있다. 실제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들어 3조 487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공시했고 메리츠금융지주(138040)(1조 3억 원), 삼성물산(028260)(9322억 원), 현대차(005380)(9160억 원), KB금융(105560)(8200억 원) 등의 기업들도 대규모 소각 계획을 발표하며 자본 효율성 제고에 나섰다. 아울러 금양(001570)·이수페타시스(007660) 등의 유상증자가 금융감독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며 자본금의 신규 유입도 눈에 띄게 줄었다. 거래소는 내년부터 상장폐지 요건에 보다 강화된 시가총액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 배당 활성화, 지배구조 개선 정책까지 더해지면 상장 자본금 감소 추세는 구조적 변화로 굳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자본금이 줄면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주식 공급이 줄면서 수급 부담이 완화되고, 장기적으로는 ROE와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져 기업가치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며 “기업공개(IPO) 시장이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모주들의 주가도 크게 오르며 질적 성장을 기반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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