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섰던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서자 의료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의정갈등 해소의 열쇠를 쥔 또다른 주체인 전공의들의 수련 재개를 위한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의 대화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는 이른바 ‘탕핑(躺平·드러눕기)’ 전략으로 일관하던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수련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지도부가 교체되고 국무총리가 직접 의료계와 만나면서 의정 간 대화의 물꼬가 트였지만 사태 해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존 전공의 7대 요구안보다 간소화한 대정부 협상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오늘 오후 5시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과의 간담회 결과를 토대로 19일 대의원 총회를 열어 새로운 대정부 요구안을 확정할 전망이다.
16개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전일(13일) 성명을 내고 "의대생들의 복귀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며 "이번 결단은 국민 건강과 의료의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이자 깊은 고뇌 끝에 나온 용기 있는 판단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제 필요한 것은 복귀한 학생들에 대한 제도적 보호와 배려"라며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학사 일정 조율, 수련 과정 설계, 정서적 안정과 권리 보장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의 복귀가 불안과 고립이 아닌 존중과 환영 속에서 이뤄지도록 사회 전체가 함께 나서야 한다"며 "다시는 의료 대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 정책의 수립·변경에 반드시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실질적 의정 협의체도 구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대 교수들도 학생들이 충실하게 학업을 이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날 복귀 환영 성명을 통해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교실로 돌아오는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전의비는 "이제 현 정부와 국회,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마련해 나가야 할 때"라며 "국회가 대통령과 정부에 건의한 교육 정상화 방안과 지속적인 협의 구조 마련 요청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이달 말 공고될 하반기 전공의 모집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대전협은 이달 초 전공의 8458명이 참여한 설문 조사를 통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 개혁 실행 방안 재검토 △입대 및 입영 대기 상태의 전공의에 대한 수련의 연속성 보장 △불가항력의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을 복귀 선결 조건으로 압축했다. 시급한 사안부터 합의점을 도출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되면 의정 협의체를 꾸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그러나 복귀를 고려하는 전공의 중 상당수가 ‘필수의료 지원 방안’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점은 새 정부에도 부담스러운 요소다. 복귀한 전공의가 수련을 마칠 때까지 군 입대를 연기해주는 ‘입영 특례’ 요구 역시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전공의 수련을 이유로 입영 특례를 적용할 경우 지역·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중보건의가 대폭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공의는 전문의 시험 추가 실시도 요구하고 있다. 수련 공백이 3개월을 넘으면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을 제한하는 현행 규정상 레지던트 3~4년 차는 올 9월 수련을 재개하더라도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문의 시험에 응시하기 어려워서다. 진료과별 전문의 시험에는 36억 원 상당의 정부 예산이 소요되는 까닭에 이 역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밖에 1년 반 가까이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워온 진료지원(PA) 간호사들과의 역할 재정립, 의료사고 특례법 개정 논의, 전공의 수련 시간 단축 등도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실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전문 과목에서 수련을 받던 전공의들의 복귀 의사는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을 떠나있던 전공의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의료단체들의 회동 이후 낸 성명에서 "정부가 전공의·의대생에게만 지속해서 특혜성 조치를 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먼저 돌아온 전공의·의대생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또다른 환자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의대생 복귀를 두고 "사과 없는 복귀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현재 전국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총 2532명으로, 의정갈등 이전 1만3531명의 18.7% 수준에 불과하다. 사직 전공의들은 이달 말 공고될 하반기 모집을 통해 수련병원에 복귀할 수 있다. 다만 절반 이상이 일반의로 의료기관에 취업했고 일부는 수련을 포기해 의대생과 같은 전원 복귀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전협과 의대교수협은 전일 공동 성명을 통해 사제 간의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날 간담회에서 수련과 교육 단절을 포함해 현재 의료 시스템이 직면한 상황에 대해 깊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수련 과정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전공의에게 최적의 교육 기회가 보장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정책 보완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전공의 수련에는 정부의 각별한 행정·재정적 지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국민의 적극적인 성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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