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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골퍼’ 그레이스 김 “부모님의 ‘웰던’ 칭찬, 두 단어에 모든것 담겨있었죠”

여자골프 메이저 에비앙 막판 ‘이글-버디-이글’ 전율의 역전 우승

“우승 전후로 달라진 건 없어…英메이저서 또하나의 드라마 기대”

청소·간병으로 뒷바라지한 한국인 부모에 “두분 희생 너무 잘 알아”

가족·시간이 가장 중요한 가치…투어생활 함께하는 여행 너무 소중

슬럼프 때 고민 숨기지 않고 팀과 솔직한 대화, “연장땐 캐디만 믿어”

“골프론 ‘올라운더’, 골프 외로는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지난달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드라이버 샷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달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경기 장면. AFP연합뉴스


기회는, 또는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을 믿느냐는 물음에 호주 태생의 교포 선수 그레이스 김(25)은 이렇게 답했다. “열심히 할수록 운도 따른다는 말로 이해하지만 동시에 골프 경기에서는 경기력 외에 운도 좀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달 13일(한국 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나온 그레이스 김의 우승은 ‘행운’을 넘어 ‘기적’으로 회자한다. 한 홀 남기고 선두 지노 티띠꾼(태국)에게 2타 뒤진 3위라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18번 홀(파5) 이글로 연장에 갔고 같은 홀에서 1차 연장전 칩인 버디, 2차 연장전 이글로 생애 첫 메이저 제패와 함께 투어 2승째를 올렸다. 야구로 치면 9회 말 2아웃 동점 만루 홈런 뒤 연장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셈이다. 외신들은 ‘전율의 마지막 세 홀’ ‘마법의 연속’이라며 놀라워했다.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그레이스 김이 1시간 안에 선보인 3개의 샷은 모두 메이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샷일 것”이라고 했다. 특히 1차 연장전 버디는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린 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온 반전 드라마였다.

칩인 버디 상황을 두고 우승 인터뷰 때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던 그레이스 김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웃었다. 다음 주 메이저 AIG 여자오픈에서 또 하나의 드라마를 기대해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못할 이유는 없다. 바람 등 어려운 조건이 많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어릴 적 호주 멜버른의 링크스 코스들을 꽤 경험해 봐 영국의 링크스 코스도 기대하고 있다고.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꼭 끌어안은 그레이스 김. AFP연합뉴스


골프계에 그가 불러온 흥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레이스 김 본인은 이미 차분하다.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많아졌다는 것 말고는 우승 전후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우승 후 부모님의 반응도 담백했다. “그냥 ‘웰던(수고했어)’ 이 두 단어였죠. 하지만 이 짧은 말 안에 우리 가족의 긴 여정이 담겨 있어요. 저를 이렇게 키우기까지 있었던 두 분의 희생을 너무 잘 아니까요. 두 단어는 제게 정말 많은 것을 의미했어요.”

호주로 이민 간 그레이스 김의 한국인 부모는 청소 업체를 운영하며 딸에게 골프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요양시설의 간병인으로 일하기도 했다고. 2023년 첫 우승 때 그레이스 김은 “돈을 벌어 부모님을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었다.



영어로 통화를 이어가던 그는 어릴 때부터 일상에서 부모님이 강조한 게 뭐냐고 묻자 “이거는 한국말로 해야 할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감사하게, 겸손하게, 소중하게.” 그는 이 글귀를 엄마가 주니어 대회 때 일러준 성경 한 구절과 함께 인스타그램 소개글로도 쓰고 있다.

그럼 그레이스 김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가족, 그리고 시간”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내 꿈을 위해 당신들의 꿈을 포기했다. 그런 그들과 지금은 투어를 같이 다니는 여행을 하면서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설명이다.

2020년부터 후원해온 아디다스를 언급하며 “골프장 안팎 어디서든 입기 좋은 의류와 쿨하고 트렌디한 신발이 정말 정말 마음에 든다”고 감사를 표시하기도 한 그레이스 김은 “지난해에 한국에 여행 갔을 때 매일 (K뷰티 성지인) 올리브영을 찾았다”거나 “한국의 카페 문화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레이스 김의 강점은 모든 샷을 똑바로 보내는 능력이다. 목표 지점보다 짧거나 긴 실수는 있어도 좌우 미스는 거의 없다. “어릴 때 동네에 큰 연습 시설이 없어서 그저 매일 열 바구니씩 최대한 똑바로 치는 연습만 했다”는 설명.

2023년 데뷔 해에 바로 우승을 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는 슬럼프를 겪었다. 원하는 퍼포먼스가 계속 나오지 않자 사랑했던 골프도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레이스 김은 “그때 혼자 담아두지 않고 (캐디, 트레이너, 장비 담당, 에이전트 등) 우리 팀과 솔직한 대화를 했다. 그러면서 목표를 재설정했고 제 궤도도 찾았다”고 했다. 이번 우승도 “우리 팀의 정말 퀄리티 있는 준비 덕분”이라고 한 그는 2승이 모두 연장 승리인 데 대해서도 “연장 가면 다른 것 생각지 않고 캐디만 믿는다”고 했다.

그레이스 김의 롤모델인 ‘전설’ 캐리 웹(호주)은 우승 직후 영상 통화로 “TV 보며 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또 다른 롤모델은 미셸 위(미국)인데 “미셸과 닮았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앞으로 어떤 롤모델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레이스 김은 “골프로는 드라이버부터 퍼트까지 고루 잘하는 ‘올라운더’로, 골프 외로는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꼭 레전드가 되지 못해도 괜찮아요.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들과의 관계, 말과 행동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물론 골프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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