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장소와 공간에서 특별한 지금을 보내고 있을 그들과 만나 또 다른 미지의 장소와 공간을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사월의눈’은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출판사다. 사진책을 중심에 두고 이미지, 텍스트, 디자인의 상호 관계를 실험한다. 디자인 저술가 전가경 사월의눈 대표와 북디자이너 정재완 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며 지역성과 시각 문화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전 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문학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와 주변부 시각문화를 꼼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출판 기획 및 저술을 통해 기록하는 데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그래픽 크리틱’, ‘세계의 아트디렉터 10’, ‘펼친 면의 대화’ 등 이 있다. ‘정병규 사진 책’ 시리즈와 이미지, 텍스트, 장소의 관계를 탐색하는 ‘리듬총서’ 기획을 통해 사월의눈의 고유한 시선을 보여준다.
정 교수는 북디자이너이자 영남대학교 시각디자인 학과 교수로,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 교육, 저술 등 넓은 범위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민음사 북디자이너를 거쳐 AGI(국제그래픽 연맹) 정회원으로 활동하며, 지역과 연결된 디자인 실천, 글쓰기, 전시 기획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두 사람은 2025년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100 Films 100 Posters’에서 공동 총감독을 맡아, 영화와 포스터라는 매체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시각 언어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교차점 위에서 시작된 ‘사월의눈’은 봄날 불현듯 내리는 눈처럼 잠재된 감각을 담아내는 기록의 이름이다.
◇작업실 이야기
Q. ‘사월의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전가경(이하 전 대표): 출판사를 시작하자고 한 건 저였어요. 정재완 씨와는 북디자이너 정병규 선생님이 진행하신 디자인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당시 전통 시각문화를 공부하다가 같은 조로 활동하면서 인연이 닿았죠.
저는 학부 때 문학을 공부했는데, 30대 초반에 시각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게 됐어요. 약간 사연이 좀 깁니다(웃음). 당시 취미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 1960년대 독일 잡지 ‘트벤(Twen)’을 소재로 석사 논문을 쓰게 됐어요. 당시 스승이셨던 정병규 선생님께서 ‘트벤’을 언급하시면서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중요한 잡지인데 제가 독일어를 하니까 연구해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들여다보니 무척 흥미로운 잡지더라고요. ‘사진 다루기’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면서 흠뻑 빠졌어요. 디자이너가 사진을 지면에 나열하거나 배치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이후 대학원 졸업 무렵 ‘AGI Society’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출판팀을 새롭게 만든다며, 입사를 제안해 주셨고, 그렇게 디자이너가 설립한 출판팀인 ‘아지북스’에서 자연스럽게 이미지 기반 책들을 편집·기획하게 됐어요. 논문을 쓴 후 현장에서 관련 실무를 익힐 수 있는 기회였죠. 지금 돌이켜보면 우연과 운이 저로 하여금 사월의눈이라는 길로 가도록 한 것 같아요.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나 유럽 서점들을 다니며 사진책을 감상했는데, 국내에는 양질의 저렴한 사진책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사진책 출판의 틈새를 보게 됐어요. 그래서 2012년쯤, 재완 씨에게 제안을 했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게 ‘사월의눈’이었어요.
정재완(이하 정 교수): 기획과 편집은 가경 씨가, 디자인은 제가 맡기로 했죠. 제가 가경 씨 석사 논문 디자인도 해줬거든요(웃음).
전 대표: 맞아요. 그때 작업하면서 ‘우리 둘이 호흡이 잘 맞는다’는 걸 느꼈고, 같이 책을 만들면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Q. ‘사월의눈’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이름이 참 인상적입니다.
전 대표: 지난 2012년, 출판 등록을 앞두고 이름을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마침 4월이었고, 서울에서 예상치 못하게 눈이 내렸어요. 그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불현듯 ‘4월의 눈’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더라고요. 당시 우리는 사진책 출판이 그리 낭만적이거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현실적인 각오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4월의 눈’이라는 말이 주는 특유의 정조, 혹은 아이러니함이 사진 출판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정 교수: ‘눈’이라는 단어가 내리는 눈(snow)이기도 하고 보는 눈(eye)이기도 하잖아요. 처음 한글로 이름을 정했을 땐, 그 중의적인 의미가 참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웹사이트 도메인을 정하면서 영어 이름을 택할 때는 ‘snow(내리는 눈)’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올해 4월 서울에 눈이 왔을 때 몇몇 지인들이 저희에게 눈 오는 영상을 보내주시기도 했죠. 이제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한 가지로 정리된 셈입니다. 한글이 지닌 동음이의어의 재미가 조금은 사라진 게 아쉽긴 하지만.
전 대표: 정작 제가 이름을 지었던 곳은 서울이었고, 그 뒤에 첫 책을 만들고 대구로 내려왔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대구는 겨울에도 눈이 잘 오지 않아요. 그래서 사월에 눈이 내리던 그 풍경은, 여전히 이름만큼이나 낯설고도 특별한 감각으로 남아 있어요.
Q. 대구에서 특별히 중구 지역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업 공간을 정할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하셨는지요.
정 교수: 처음 대구에 왔을 땐 직장인 영남대 근처 시지라는 지역에 살았어요. 수성구 끝자락의 신도시였죠. 대단지 아파트에 병원도 있고 생활 인프라는 정말 잘 갖춰진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2~3년 정도 지냈는데, 저희에겐 특별한 감흥이 없더라고요. 집을 다시 구하게 됐을 때는 대구 구도심 쪽이 흥미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결국 그곳에 있는 신축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사월의눈 첫 작업실을 인근에 마련했어요. 나름 의미 있는 순간이었어요.
전 대표: 이후 우연히 저렴하게 나온 오래된 일자 한옥을 발견했고, 대구에서 교류하는 건축 스튜디오 ‘오피스 아키텍톤’의 최영준, 우지현 소장님께 사무실로 개조할 수 있을지 자문을 구했죠. 그분들의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한 후 지금의 작업실에 정착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자리 잡은지도 벌써 6년째가 됐네요.
Q. 스튜디오 주변에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 대표: 딱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지만, 외부 손님이 오시면 걷기 좋은 곳으로 보통 북성로를 추천하곤 해요. 대구시 공식 관광지는 아니지만, 저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동네거든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60년대까지의 근대 건축물도 간간이 남아 있어서 도보로 대구의 옛 흔적을 천천히 둘러보기에 좋은 곳이에요.
‘더 커먼(The Common)’이라는 제로웨이스트 숍이자 비건 카페를 좋아합니다. 제가 비건 지향 식생활을 해서 자주 방문하기도 하고, 공간을 운영하시는 강경민 님이 디자이너이자 액티비스트로 활동 중이라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는 곳이죠. ‘책빵 고스란히’도 추천하고 싶네요. 집에서 가까운 동네 서점이자 카페인데, 토마토 스튜인 토마토 수영장과 밀크티가 맛있고, 조용히 책 읽기나 작업하기 좋아요.
마지막으로 ‘북 셀러 호재’라는 헌책방인데요. 미감이 뛰어난 운영자가 선별한 책들을 만날 수 있어서 책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꼭 소개하곤 해요.
정 교수: 저는 ‘오오극장’이라는 독립영화 전용관을 꼽고 싶습니다. 55석 규모의 소극장인데, 대구의 젊은 영화인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어요. 주로 엄선된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매년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죠. 오오극장 같은 장소는 다른 무언가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또 하나는 ‘KB팩토리(경북프린팅)’라는 인쇄소입니다. 저희가 만드는 사진책들의 대부분은 여기서 인쇄되고 있어요. 서울에도 좋은 인쇄소가 많지만, 거리나 단가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작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KB팩토리는 재정적 안정성을 갖춘 인쇄소로, 시설과 기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디자인적 니즈도 충실히 대응해 주셔서 저희 작업에는 없어선 안 될 존재죠.
Q. 대구 지역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는 네트워킹 모임이 있나요?
정 교수: 대구에서 디자이너들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기회 중 하나가 대구단편영화제의 ‘디프앤포스터(diff n poster)’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전주영화제의 ‘100 Films 100 Posters’전시와 비슷한 포맷으로, 4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 혹은 작가들이 40편의 단편 영화 포스터 제작에 참여하는 전시 행사입니다. 특히 이 행사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창작자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지역 내 다른 업계의 전문가들을 통해 더욱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있기도 합니다.
전 대표: ‘FDSC’회원으로서 작년에 FDSC 지역 모임을 꾸렸어요. 작년 상반기에 2주 간격으로 다섯 차례 포트폴리오 리뷰 모임을 가지면서 대구 및 경상도 기반 여성 디자이너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었죠. 사실 2~3년 전만 해도 저에겐 대구에 끈끈한 네트워크가 전무했어요. 상당히 고립된 채 지내던 시기도 있었는데요. 코로나 전후로 뜻이 맞는 여성 디자이너들과 만나기 시작해 지역 내 강단 있는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 작업 이야기
Q. 다양한 매체 중에서도 특히 ‘사진’에 집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어떤 의미인지요.
전 대표: 초기에는 사진 혹은 사진과 글의 관계에 초점을 뒀어요.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 저 스스로 왜 이런 작업들을 계속하게 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뒤늦게 깨닫게 됐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하는 일’, 그러니까 스토리텔링이더라고요. 그것을 글로 할지, 이미지로 할지, 혹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통해 풀어낼지를 고민해온 거죠. 저는 특히 이미지와 텍스트가 함께 만들어내는 이야기 구조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 책은 그 방식을 실현하기에 적절한 매체였어요. 사진의 배열이나 구성 방식이 마치 소설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도 사진책을 좋아했거든요.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히는 감각이 좋았던 거예요.
초창기에는 ‘사진가를 위한 플랫폼이 되자’ 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사진 책을 만들고자 했던 진짜 이유는 글이 아닌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점에 있었던 것 같아요.
Q. ‘사월의눈’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입문용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정 교수: 사월의눈이 만드는 책은 주제나 접근 방식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어떤 책이 입문자에게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최근에 나온 책 위주로 말씀드리자면, ‘어서 오십시오’를 추천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글자에 대한 관심사’의 연장선에서 만든 책이라 애정이 큽니다.
Q. ‘어서 오십시오’ 라는 제목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표지 이미지도 눈에 띄고요. 제목에서 일종의 환대나 초대 같은 느낌도 받았어요.
전 대표: 맞아요. ‘어서 오십시오’는 저희가 디자이너 출신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사진책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지나쳐버리는 거리의 글자들을,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풍경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사월의눈이 지향하는 ‘새로운 시선’이라는 철학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작업입니다.
Q.사월의눈을 대표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 ‘리듬 총서’는 어떤 계기로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전 대표: ‘리듬 총서’는 대구에서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리즈예요. 제가 대구에 살면서 놀란 것 중 하나는 대구에 대한 외부 편견이 굉장히 강하다는 점이었어요. 서울을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잘 없는데, 대구에 대한 험한 표현들은 공공연히 존재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실제로 대구에서 만난 분들 중에는 다양한 방향의 활동을 하시거나, 수도권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진 분들도 많았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단편적이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죠.
고민 끝에 각 지역의 정서나 리듬, 풍경을 다층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도시의 소리나 풍경, 시간의 흐름 같은 것들을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리듬 총서’라는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
Q. ‘리듬총서’ 시리즈에서 첫 책 ‘대구는 거대한 못이었다’를 보면, 지역을 아주 직설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은유적으로 풀어낸다는 인상이 있어요.
전 대표: 엄도현 사진가의 시선으로 본 대구 관찰기에요. 작가님은 현재 프랑스에서 10년 넘게 살고 계세요. 낯선 이의 감각으로 대구를 바라볼 때 보다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되지 않을까라는 판단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죠. 대구가 여름에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것처럼요(웃음).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님이 리서치를 하다가 ‘과거에 대구는 거대한 호수였다’는 문장을 발견하신 거예요. 저는 무척 흥미로운 단서라고 생각하고, 이걸 단초 삼아 작업을 이어가자고 서로 합의했어요. 엄도현 작가님이 대구의 호수 흔적을 찾아다니며 일종의 사진 일기를 쓰셨는데, 덕분에 멋진 책이 나올 수 있었고, 국내외로 많은 관심을 받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Q. 책을 출간하실 때 주제를 선정하거나 기획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보통 어떤 계기로 한 권의 책이 시작되는지 궁금합니다. 작가 선정의 기준이 따로 있을까요?
전 대표: 제가 주로 사월의눈 기획과 편집을 맡으며 방향을 설계하는데, 그 과정에서 협업자인 정재완 씨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작가를 선정할 때는 이력보다 당연하게도 작업 분위기를 먼저 보고요.
저는 보통 ‘사진적이지 않은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 끌리는데요, 그 기준은 굉장히 직관적인 편이에요. 사진의 완성도는 물론이거니와, 전통적인 사진 교육에서 강조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작가님들을 찾고 있어요. 한 작가의 작업이 눈에 들어오면 이후 전시를 꾸준히 찾아보면서 지켜보는 편입니다. 실제로 몇 년간 관찰한 뒤에 연락드린 경우도 많아요.
정 교수: 그런 접근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저희가 특정 학교나 사진계 네트워크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런 배경이 없기 때문에, 오롯이 ‘사진’ 자체로만 작업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 대표: 작가님께 연락을 드릴 때는, 협업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고려합니다. 소통이 잘 되는 분일수록 결과도 자연스럽게 좋아지더라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신인 작가에게 연락을 드리기도 하죠. 이미 잘 알려진 작가와의 작업도 분명 장점이 있겠지만, 실험적인 시선이나 유연한 태도를 가진 분들과의 협업에서 새롭고 신선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많거든요.
반대로 유명 작가의 작업을 소개한다면, 그분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 예를 들어 구본창 선생님을 작가님으로 모신다고 했을 때 선생님의 1980년대 디자인 작업들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거죠. 구본창 선생님은 사진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빼어난 감각의 디자인 작업도 정말 활발히 하셨거든요.
Q. 선호하시는 디자인적 접근 방식이나 표현 방법이 있으신가요? 디자인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 교수: 저희는 책 작업을 시작할 때, 사진 작가님들과 굉장히 많은 회의를 진행합니다. 작가분들이 놀라워하실 정도로 의견을 충분히 교환하고 소통하죠.
디자인 과정에서도 일반적인 사진 도록처럼 대표작을 일렬로 배열하는 방식은 지양합니다. 지금까지 만든 책 중 그렇게 구성한 사례는 단 한 권도 없어요. 오히려 저희는 이미지가 갖는 서사를 어떻게 연출할지, 어떤 판형과 편집 구조 안에 담아낼지를 고민하죠.
시각디자인 전공자라면 공감하실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사진책이야말로 타이포그래피의 영향력이 굉장히 큰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의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타이포그래피가 책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폰트를 고르는 데서부터 조판, 여백, 자간과 행간 하나하나까지 가능한 한 깊이 고민하고, 세밀하게 조정하려고 애씁니다.
Q. ‘사월의 눈’에서 제작한 책은 온라인 주문이나 소규모 책방, 디자인 전문 서점에서만 구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유통 방식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 대표: 유통 방식은 저희가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소규모 독립 출판을 하는 입장에서 사실상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에요.
정 교수: 저희 책은 대부분 사진책인데, 대형 서점의 오프라인 매대에서 사진책이 좋은 위치에 전시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교보문고 대구점만 가봐도 사진 코너에는 실용서들이 대부분이라 저희 책이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했어요.
오히려 책의 성격을 이해하는 독자들과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소규모 독립 책방이나 사진 전문 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특정 독립서점들과는 직접 거래를 통해 유통하고 있고, 대형서점은 온라인 구매처를 이용해 접근성을 높이고 있어요.
전 대표: 처음부터 저희는 ‘책으로 수익을 내자’가 목표가 아니었어요. 다음 책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제작비가 회수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출판을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네요.
Q. 사진책은 한 권을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과 깊은 고민이 담기는 장르인 만큼, 대중적이거나 수익성 있는 출판물과는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책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 대표: 사진에 대한 개인적인 애호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넘어서 사진책이 가진 표현 방식으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어요. 우리가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듯, 사진도 분명 하나의 언어이고 스토리텔링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지금은 다양한 미디어가 공존하는 시대이고, 책도 그런 변화에 맞춰 더 다양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예전에는 문자 중심의 책이 주를 이뤘지만, 사진 인쇄 기술이 발전하면서 책의 형태도 달라졌고요.
사진책이 마이너한 장르임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미지의 힘은 말이나 글로는 담기 어려운 감각과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사진책을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책이라는 매체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하는 하나의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런 잠재성을 건드려 보고자 합니다.
Q. 안그라픽스의 ‘세계의 북디자이너 10’를 집필하면서 다양한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셨는데요. 작업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전 대표: 스위스의 북 디자이너 ‘요스트 호훌리(Jost Hochuli)’선생님과의 만남이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전혀 스위스적이지 않은, 상당히 낯선 형태의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고 계셔서 인터뷰 요청을 드리게 됐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직감적으로 꼭 스위스까지 가서 찾아뵙고 직접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연로하신 분이 일면식도 없는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찾아온 저를 장크트갈렌(St.Gallen) 역까지 직접 마중 나오시고, 집으로 데려가 식사까지 대접해주셨어요. 인터뷰 도중엔 “나는 오후 낮잠을 꼭 자야 한다”며 저 혼자 작업실을 둘러보게 하시고선 30분 동안 휴식을 취하셨는데, 편안하고 따뜻했던 분위기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과연 나는 낯선 제3세계로부터 찾아온 방문객에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해보면 당시 선생님의 환대는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 계기로 아직까지도 선생님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어요. 재작년에 선생님께서 90세 생신을 맞이하셨는데 영광스럽게도 초대받아 축사를 건네기도 했죠(웃음). 저에게는 하나의 선물과 같은 소중한 경험이 아니었나 싶어요.
Q. 전주국제영화제의 ‘100 Films 100 Posters’ 전시를 이번에 처음 큐레이팅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셨나요?
정 교수: 굉장히 재미있게 준비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 디자이너 100팀이 참여하는 규모의 전시는 드물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프로파간다의 김광철 편집장님이 10년간 이 프로그램을 맡아오셨는데, 올해부터는 저희가 바통을 이어받았어요. 전주국제영화제 측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원했고, 가경 씨 제안으로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를 공유하는 ‘살롱’, 그리고 살롱과 연계된 ‘주제 전시’ 프로그램을 새롭게 시도했습니다. 그동안 영화와 그래픽 디자인을 연결하는 행사가 10년간 이어져 왔지만, ‘과연 그 과정에서 뚜렷한 담론이나 성과가 축적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던 기획이었어요. 덕분에 이번 전시는 이전과는 또 다른 방향성을 갖게 됐죠.
전 대표: 저희는 총감독 역할을 맡았고 큐레이터로는 강주현, 정해리 디자이너가 함께했어요. 이전에도 서로 알고 지냈지만 실제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팀워크가 아주 잘 맞았어요. 덕분에 전시 기획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고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Q. 디자이너를 위한 무대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 이번 전시는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는 뜻깊은 자리였을 것 같습니다.
전 대표: 맞아요. 예전에는 ‘타이포잔치’ 같은 큰 비엔날레가 디자이너들에게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어요. 한글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동시에 한국 디자인 문화의 교류를 위해 문체부가 주최하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전시였습니다. 2001년 첫 회가 개최됐고 그 사이 10년이란 공백이 있긴 했지만 이후 2년마다 꾸준히 열려 디자이너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무대였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별다른 공지도 없이 전시가 조용히 사라졌어요. 웹사이트조차 닫혀버린 상태라 더 당황스럽더라고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던 전시였는데, 이런 식으로 단절된다는 건 아쉬운 일이죠. 디자이너들이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Q. 정재완 님은 디자이너로서 지역 신문이나 대중 매체에 글을 기고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신문은 책보다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고요.
정 교수: 오래된 지역 문화 예술 잡지 ’대구문화’의 임언미 편집장님 제안으로 약 2년간 격월로 글을 기고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됐어요. 덕분에 ‘영남일보’에 칼럼을 연재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됐죠. 저는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글을 쓰고 싶어요. 글을 쓰다 보면 평소에 지나치거나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특히 대구에 와서 느낀 건,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었어요. 물론 지금은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디자인이라고 하면 주로 관공서나 지자체로부터 수주를 받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굉장히 전형적인 역할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생들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다 보니, ‘서울에 가야 ‘진짜 디자이너’가 된다’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디자이너가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반경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도 그런 실험 중 하나였죠.
Q. 두 분 모두 다양한 정체성과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해오셨는지, 또 어떤 형태의 활동이 더 본인에게 자연스럽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정 교수: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곤 하지만, 저는 사월의눈 대표가 아닙니다(웃음). 저는 현재 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북디자인을 가르치고 있고, 사월의눈에서는 디자이너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사월의눈과 학교라는 두 가지 축이 늘 병행되고 있는데, 그 밸런스를 유지하는 일이 꽤 중요합니다. 학기 중에는 아무래도 학교 수업과 행정 업무가 많지만, 방학이 되면 두세 달 정도는 사월의눈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죠.
사월의눈에서 북디자인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대학 수업도 더 실감 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북디자인을 가르치는 데에 흥미나 확신을 느끼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전 대표: 다층적인 활동을 하다 보니,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저를 구성하는 가장 큰 축 중 하나는 분명히 사월의눈입니다. 꾸준히 해오고 있는 강의·글쓰기·연구 역시 제 정체성을 대표하죠. 지난달 ‘그래픽 크리틱’이라는 이름의 한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5년 동안 정말 힘들게 작업했는데요. 오히려 책을 마무리하면서 느꼈던 건, 제가 그래픽 디자인에 큰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번 출판을 통해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큰 과제 하나는 끝냈다’라는 감정이 먼저 찾아왔어요. 그리고 제가 연구자로서 적합한 인물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근래에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시와 살롱을 기획했던 경험에서, 그리고 사월의눈에서 사진책 기획하는 활동에서 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결국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기보다는, 그때그때 ‘내가 흥미를 느끼고 보다 더 몰입하고 싶은 일’에 충실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뚜렷한 정답보다는 그런 열린 상태로 유연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 앞으로의 이야기
Q. 대구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거나 활동하려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혹은, 지역에서 커리어를 꾸려가는 데 고민이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정 교수: 대구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거나 디자이너로 활동하려는 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학생들, 그리고 지역에 남아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어 하는 학생들로요. 체감상 대구를 떠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저는 주저 없이 ‘적극적으로 떠나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구에 남는 것을 일종의 사명감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 들어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부각되면서, 일부 학생들은 자신이 우리 지역을 지켜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접해보고, 다양한 선택지를 통해 자기만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다른 도시나 나라로 나아가려는 학생들의 도전을 저는 언제나 응원하고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어떤 선택이든 휩쓸리지 말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면 좋겠다는 점이에요. 본인이 원하는 방향은 스스로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 뒤 다시 대구로 돌아와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진다면 그것 또한 긍정적인 현상이겠지요. 더 많이 보고 배운 사람들이 대구에서 새로운 어젠다를 이끌어가는 것 또한 무척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요.
현재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튜디오나 디자이너들도 점점 연차가 쌓이면서,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게 됩니다. 꼭 대구 안에서만 일거리를 찾지 않아도 되고, 활동 영역을 전국 단위로 유연하게 넓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Q. ‘사월의눈’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전 대표: 몇 년 전 재완 씨와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의 감각이 더 이상 동시대적이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사월의눈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죠. 저는 나이가 들수록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자기 객관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디자이너로서 시대의 흐름에 둔감해진 채 계속해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어쩌면 창작이라기보다는 취미 활동에 가까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특별한 능력이 평생 지속된다고도 생각하지 않기에, 언젠가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미련 없이 멈추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대구라는 지역과 사월의눈의 관계를 곱씹어 보자면요. 저희는 대구로의 이주를 ‘생계형 이주’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대구와 사월의눈 사이에 흥미로운 레이어가 겹겹이 쌓이게 됐어요.
물론 이 연결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대구는 아마 저희가 평생 머물 도시는 아닐지도 몰라요. 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죠. 사월의눈 활동도 지금은 계속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단언하기 어려워요. 언젠가 ‘그 시기’가 온다면 깔끔하게 멈추고 새로운 분야나 전혀 다른 가능성에도 열린 마음으로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