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15원 가까이 급등하면서 외환시장의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 경제지표 호조에 따른 달러 강세와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이 맞물리며 원화 약세가 가속화된 영향이다.
그동안 미 행정부의 약달러 선호 기조와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따른 불확실성 해소로 환율 부담 완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국내 세법개정안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환율 전망이 급격히 반전되고 있다.
특히 올 9월부터는 미국의 관세 조치가 본격화되는 데다 고환율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압력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경제가 ‘고물가·저성장’의 이중고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이 환율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응답자가 올 3분기 중 원·달러 환율이 1340원에서 1450원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상반기 1500원 돌파 우려에 비해서는 다소 안정된 수치지만 최근 한 달 평균 환율(1375.85원)과 비교하면 상승 압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셈이다.
환율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는 미국의 견조한 경제지표가 꼽힌다. 전날 발표된 6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와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모두 시장 예상을 상회하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이에 따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이날 장중 100선을 웃도는 등 강달러 흐름이 지속됐다. 위재현 NH선물 연구원은 “4월에는 관세 이슈가 미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달러 약세로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물가 상승 요인이 부각되면서 금리 인하 지연 전망이 강해지고 있어 달러 강세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이슈 또한 환율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시장에서는 기업 및 증시 관련 세법개정안이 기대에 못 미쳐 실망감이 커지며 외국인 자금 이탈의 빌미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형중 우리은행 애널리스트는 “증세로 인한 기업 실적 부담과 예상에 미치지 못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개정안에 실망 매물이 쏟아져 원화가 약세 압력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한 달간 원화 절하율은 주요국 통화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2%대에 그쳤다. 이는 외국인 자금 유입에 따른 원화 방어 효과였지만 이날 외인 자금이 다시 빠르게 유출되며 원화 약세 폭도 함께 키웠다.
무역 환경 역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미국이 주요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진전을 이뤄냈지만 10%를 넘는 고율 관세가 한국을 비롯한 수출 의존국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이로 인해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되며 달러 매수세가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3분기부터 관세의 실질적 영향이 본격 반영되면 국내 경기는 한층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성장 둔화는 금융시장 전반의 위험 선호 심리를 약화시키고 이는 다시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흐름은 수입물가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해 연간 물가 목표치인 2% 수준마저 다시 위협할 수 있다.
문홍철 DB투자 연구원은 “미국보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기 둔화 폭이 더 크다는 점이 강달러 지속의 핵심 배경”이라며 “지금까지 약달러에 베팅했던 포지션들이 8월 휴가철 이후 조정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말로 갈수록 미국 경제지표가 둔화되면 원·달러 환율이 점차 안정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전망 또한 일부에서 나온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미국 지표가 겉으로는 견조해 보이지만 소비·고용의 추세적 둔화가 확인될 경우 달러 약세로 전환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환율 급등은 과잉 국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최근 글로벌 자본이 환 헤지 필요성을 자각했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임기 전반부에 걸쳐 달러화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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