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명품 탄산수 '페리에'가 '천연 광천수'라는 명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8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 소비자 권익단체는 네슬레가 천연 생수 처리 규정을 위반했다며 사법 당국에 고발했다. 프랑스 사법부는 조만간 페리에의 '천연 생수' 자격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어서 전 세계 생수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페리에는 특유의 미네랄 풍미를 앞세워 일반 물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는 대표적인 프리미엄 생수다. 그러나 지난해 프랑스 르몽드 등 현지 언론이 페리에를 포함한 프랑스산 광천수 3분의 1이 불법적인 정수 과정을 거쳤다고 폭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유럽연합(EU) 법규상 '천연 광천수'는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어떠한 살균이나 정화 처리도 엄격히 금지된다. 하지만 네슬레는 수돗물 정수에나 쓰이는 탄소 필터, 자외선(UV) 처리, 초미세 필터 등을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천연'이라는 이름과 달리 인위적인 정화 과정을 거친 물을 비싼 값에 팔아온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5월에는 네슬레 워터스가 이러한 규정 위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정황까지 드러나 파문이 확산했다.
네슬레가 불법 정수에 나선 배경에는 기후 변화로 인한 심각한 수원지 오염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BBC에 따르면 최근 잦은 폭우와 가뭄으로 지하수가 오염되자 다수의 생수 업체들이 원수 품질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의 수문학자 엠마 하지자는 "업체들이 물을 정수해야만 한다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사업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페리에는 '천연 광천수' 지위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네슬레 측은 문제가 된 초미세(0.2마이크론) 필터 사용은 중단했으며 현재는 정부와 협의한 0.45마이크론 필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법적 쟁점은 어느 수준의 필터 사용부터 물의 성분을 변형시키는 '정화 행위'로 볼 것인지에 맞춰질 전망이다.
BBC는 "EU 규정은 물을 소독하거나 미네랄 성분을 변형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만 명시하고 있다"며 "미세 필터가 물의 핵심 특성을 변형시키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이번 논란을 종결할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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