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인공지능(AI) 안중근 영상이다!”
제80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벽에 부착된 스크린 속 안 의사가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더니 이내 살아 움직이듯이 온화한 미소로 손을 흔들자 관람객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관람객들은 안 의사를 지나쳐 유관순·이봉창·윤봉길·안창호 등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과 차례로 손 인사를 나눴다.
이날 전시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사편찬위원회가 공동 기획한 ‘다시 찾은 얼굴들’이다. ‘광복을 보지 못한 선열들이 오늘의 관람객을 맞이한다’는 취지로 독립운동가들의 오래된 흑백사진에 AI 기술을 활용해 색과 움직임을 입혔다.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되살리기 위해 기획자들은 영상에 미소나 손 인사 등 최소한의 동작만 구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김진실 연구사는 “기술은 역사를 새롭게 쓰는 것이 아닌 우리가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여야 한다”며 “사진 원본의 이미지를 최대한 지키는 것을 이번 전시의 원칙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경기 시흥시에서 온 신규빈(12) 군은 안 의사의 눈을 보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신 군은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 보니 살아계신 것만 같다”며 “이렇게 AI로 구현한 영상 덕분에 독립운동가들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른들도 스크린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부산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김성동(38) 씨는 “순국선열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큰 교육 효과를 줄 것 같다”고 했다.
AI가 확산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이를 활용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특히 사진이나 오래된 유물 등이 AI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으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는 ‘AI 윤봉길 의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스크린에 등장한 윤 의사에게 질문을 던지면 윤 의사가 직접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기도 한다. 경기 남양주시와 수원시, 강원 춘천시의 박물관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이 등장하는 AI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기업들도 앞다퉈 AI 광복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SK텔레콤은 광복 8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광복 80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전쟁 : AI 독립’을 13일 자사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SK텔레콤의 AI 기술을 활용해 복원한 독립운동가 등 80인의 애국가 합창을 통해 광복 80년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다큐멘터리는 SK텔레콤의 AI 기반 슈퍼노바, 음원 분리 기술로 얼굴과 음성을 복원한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등 80년 전 독립의 주역들과 현재 AI 주권 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AI 전문가, 미래 AI 시대의 주역이 될 학생 등 80인의 애국가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콘텐츠를 통해 SK텔레콤의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 주권이 걸린 전략 자산임을 강조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은 민간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그려DREAM’은 최근 AI를 활용한 ‘독립운동가 복원 프로젝트’를 선보여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10대 독립운동가들이 현대의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은 숏폼 영상은 593만 회 조회되기도 했다.
그려DREAM 채널 운영자 A 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영상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20대 대학생”이라며 “독립운동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 영상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삶도 영상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A 씨는 “AI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며 “독립 투사뿐만 아니라 제주 4·3 사건이나 5·18 민주화운동 등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며 채널을 확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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