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14일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 대상 기준 금액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 원(국비 300억 원)에서 1000억 원(〃500억 원)으로 변경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급등한 공사비로 공공 공사 유찰이 늘어나고 SOC 예산 미집행이 증가하자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예타 기준을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예타 제도 도입 때에 비해 급증한 공사비를 감안하면 기준 금액 현실화 등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94조 3000억 원으로 역대 네 번째로 컸다. 7월부터 집행이 시작된 2차 추가경정예산까지 반영되면 연말에는 1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가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 데 이어 이날은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려면 소비 회복과 내수 시장 육성 전략이 필수적이며 2차 내수 활성화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약 이행에 필요한 대규모 국채 발행에 이어 3차 추경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SOC 사업 속도전에 나서며 예타 기준까지 낮추면 정치 논리에 편승한 예타 면제 사업이 무분별하게 늘어날 수 있다. 늘어난 SOC 사업 집행 과정에서 부족한 돈은 적자 국채 발행에 기대게 돼 혈세 낭비로 이어질 게 뻔하다. 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빚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올 들어 7월까지 재정 충당을 위해 한국은행에서 빌린 돈, 이른바 ‘한은 마통’ 규모는 114조 원으로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지난해 4.1%로 정부의 재정준칙 기준인 3%를 5년 연속 웃돌았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국가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면 신용등급 여력이 축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랏빚이 급증하면 물가 상승과 경기 불안, 국가 신인도 하락 등으로 경제가 골병이 들 수 있다. 경제성장률 하락 문제는 무분별한 재정 지출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혈세 낭비로 이어질 무차별적 현금 지원을 자제하고 구조 개혁과 경제 살리기 법안 등을 통한 성장 잠재력 확충에 전력을 쏟아야 할 때다. 정부는 재정 중독에 경계심을 가지면서 국제기관의 권고대로 재정준칙 도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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