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간) 알래스카에 열린 미러 정상회담이 러시아에 유리한 쪽으로 흘렀다는 다수의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미국 측 협상 참여자들이 입을 모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챙길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전엔 반대하고 안보 보장 안에는 찬성했다면서 유럽 방어에 손을 떼려던 기존 전략을 뒤집는 입장을 보였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17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이 할 수 있는 것과 제안할 수 있는 게 많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안전 보장에 대한 미국의 약속(US commitment to a security guarantee)을 제안할 경우 그건 매우 큰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8일 예정된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안전 보장 방안을 먼저 제시할 수도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루비오 장관은 미러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함께 3대3 회의에 직접 참여한 인사다. 루비오 장관은 “이는 그런 양보까지 할 정도면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간절히 평화를 원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이건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루비오 장관의 이날 발언은 우크라이나와 유럽 안보를 대하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그간 행보와는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북미와 유럽의 외교·안보 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향해 “돈을 더 내지 않으면 미국은 방어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종전을 계기로 사실상 나토 탈퇴 카드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자세로 유럽을 압박하면서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 5% 수준 국방 지출 결정을 이끌기도 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참여 구상에 대해서는 미러 정상회담 3대3 회의의 또 다른 참석자인 위트코프 특사도 비슷한 발언을 내놓았다. 위트코프 특사는 이날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이 나토 조약 제5조와 유사한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양보를 러시아로부터 얻어냈다”며 “이는 게임의 판도를 바꿀 만큼 강력한 안전 보장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추가 영토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말했다”고 강조했다. 나토 조약 5조는 회원국 중 한 곳이 공격을 받으면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한다는 집단방위 조항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러시아가 다시 침공할 경우 미국도 유럽과 함께 공동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위트코프 특사는 “푸틴 대통령이 이에 동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이) 어떻게 작동할지, 미국과 유럽의 역할은 무엇일지, 유럽연합(EU)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세부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언장담했던 즉시 휴전안이 회담 직후 갑자기 사라진 것과 관련해서는 푸틴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루비오 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을 요구했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았다”며 “이 전쟁을 끝낼 최선의 방법은 어떤 영구적인 휴전이 아니라 완전한 평화 합의”라고 부각했다. 그는 ‘왜 러시아에 제재를 더 부과해 휴전에 동의하도록 강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가 휴전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러시아는 이미 매우 혹독한 제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재가 고통을 주려면 몇 개월, 몇 년이 걸린다”며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는 순간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에 앉힐 우리의 능력이 심각하게 줄어든다”고 항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설명에도 상당수 서방 언론들은 미러 정상회담 결과에 우려하는 목소리를 연일 쏟아냈다. CNN은 “러시아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협상을 동반하는 평화 절차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며 “이로써 러시아는 대화와 동시에 여름 공세를 포함한 전투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푸틴 대통령은 회담 직후 발언에서 3년 반의 유혈 사태를 끝내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상황’이고 이는 러시아의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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