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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부터 개념미술까지…흙에서 피어난 한국적 美의 정수

■학고재 그룹전 '흙으로부터'

조선 도자부터 김환기·송현숙 등 7인 작품 소개

보기 드문 흑자와 대형 주병 등 한국의 멋 선봬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흙으로부터' 기획전 전시 전경. 15~16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자편호' 위로 조선 달항아리를 그린 김환기의 ‘항아리(1958)’가 전시돼 있다. 사진 제공=학고재




깊은 밤처럼 어두운 흑자편호(黑磁扁壺) 위로 김환기의 ‘항아리’가 걸렸다. 둥그런 백자대호(白磁大壺)가 두둥실 떠올라 짙푸른 밤 은은한 광채를 비추는 그림이다. 맑고 투명한 조선 백자가 하늘 위의 달이라면 빛을 수렴하는 흑자는 묵묵한 대지를 닮았다. 같은 흙에서 태어난 두 가지 빛의 그릇은 비움과 충만, 빛과 어둠을 제각각 드러내며 한국적 미의 정수를 완성한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그룹전 ‘흙으로부터’는 ‘한국적 미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흙’이라는 근본적인 물질을 소재삼아 풀어보는 전시다. 흙으로 빚은 조선시대 도자에서 출발해 김환기, 송현숙, 박영하, 이진용, 박광수, 로와정, 지근욱 등 세대를 잇는 작가 7팀의 작업을 소개한다.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쏠리는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 동안 우리 미학의 깊이를 새롭게 보이려는 시도로도 주목받는다. 신리사 학고재 학예실장은 “한국성에 대해 단일한 답을 내기보다 흙을 매개로 우리가 지닌 고유한 감성과 상상력을 되살리고 확장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영하의 ‘내일의 너(오른쪽)’와 분청자 초엽문편병. 두 작품은 흙이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제공=학고재


이진용의 대형 설치작 ‘컨티뉴엄(2025)’과 조선 후기 제작된 ‘표형문자입주병’은 시간을 거슬러 문자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학고재


김환기, ‘무제(1960년대)’. 사진 제공=학고재


본관에서 신관으로 이어지는 전시지만 두 공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전통 한옥인 본관 전시장은 김환기를 비롯해 송현숙, 박영하, 이진용 등 원로 작가들의 작품을 조선 도자와 함께 전시해 깊이 있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자와 회화의 조합이 흥미롭다. 고대 원주민 미술에서 쓰였던 천연 안료를 복원해 화면 위로 거칠게 겹치는 방식으로 자연의 원초성을 표현한 박영하의 ‘내일의 너’ 옆에 분청사기(분청자 초엽문편병)가 놓였다. 회색 태토 위에 하얀 백토를 입히고 거친 유약으로 마감한 분청의 소박한 미학이 박영하 그림의 원시적 생명력과 공명을 이룬다.

술의 정취를 노래하면서도 과하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절제의 미덕을 푸른 글씨로 사방에 새긴 ‘표형문자입주병’ 주위로는 시대를 관통하는 기호들이 펼쳐진다. 김환기의 추상적 기호가 담긴 ‘무제’에서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형태들이 거친 화면 위로 떠오른다. 수천 개의 활자가 모여 거대한 문양을 이루는 이진용의 ‘컨티뉴엄’은 작은 입자가 세상을 이루고 그 세상이 다시 또 다른 세계로 확장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박광수, ‘땅과 화살(2025)’. 사진 제공=학고재


로와정, ‘N(2025)’. 사진 제공=학고재


1980년대생 작가 3팀의 작품을 선보이는 신관은 좀 더 실험적이고 관념적인 분위기가 짙다. 선배 작가들이 흙을 직접적이고 서정적으로 다뤘다면 젊은 작가들은 흙이 품은 개념에 주목했다.

박광수는 하늘과 대지, 인간과 비인간, 시작과 끝의 경계가 흐려진 중간 세계를 강렬한 색채의 충돌로 표현한 ‘땅과 화살’ 연작 등을 선보인다. 인간과 숲이 함께 자리하는 그의 풍경에서 흙은 존재가 발 딛는 근원이다. 듀오 작가 로와정은 ‘무(無)’의 철학으로 흙을 풀어낸다. 작품은 십자 또는 일자 홈이 파인 나사못을 벽면에 박아 완성한 ‘3+1x2÷2-4’라는 수식이다. 거대한 벽면에 비해 작품은 아주 작아 가까이 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데 기껏 계산하니 값이 ‘0’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지나치게 애쓰며 사는 사람들에게 묻는 유쾌한 질문이다.

지근욱에게 흙은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로 표현된다. 색연필로 반복해 선을 긋거나 점을 찍어 완성한 추상 작품 ‘스페이스 엔진’ 연작은 땅의 중력에서 풀려난 입자가 빛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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