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6년 예산안을 계기로 지난 정부가 유지해온 건전재정 기조가 막을 내렸다. 내년도 총지출은 올해 대비 8.1% 증가한 728조 원으로 확대됐지만 세입 기반이 취약해 국가채무가 내년에만 142조 원 불어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9년에 59%까지 치솟게 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6년도 예산안 브리핑에서 “어렵게 되살린 회복의 불씨를 성장의 불꽃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확장재정을 공식화했다. 다만 단순한 확장적 재정 운영이 아니라 성과가 나는 부분에 제대로 쓰는 전략적 재정 운영을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27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구 부총리는 “줄일 것은 대폭 줄이거나 없애고, 해야 할 일에는 과감히 투자하여 성과 중심의 재정 운영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 전환으로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8.1%를 기록했고 국가재정운용계획(2025~2029년)에 담긴 연평균 증가율은 5.5%에 육박했다. 다만 추가경정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라는 점에서 실제로는 매년 8%대 증가율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2029년에는 총지출이 90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내년도 총수입 증가율은 3.5%에 불과한 반면 총지출은 8.1% 늘어나게 돼 결국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년 적자국채 발행액은 110조 원으로 전체 국고채 발행(232조)의 47.4%로 거의 절반에 달한다. 올해(113조 원)에 이어 2년간 223조 원의 적자국채가 쏟아지면 시장 소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국가채무는 올해 1273조 원에서 내년 1415조원으로 한 해에만 142조원 늘어나게 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49.1%였는데 내년에 3.5%포인트 늘어난 51.6%로 급증한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7년 53.8%, 2028년 56.2%, 2029년 58.0%까지 치솟는다. 이와 함께 재정준칙의 기준이 되었던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도 내년에 4.0%로 올라가고, 2025~2029년 5년 내내 4% 초반으로 올라간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라고 강조한다. 장문선 기재부 재정정책국장은 “주요 선진국 부채와 비교할 때 IMF 선진국 수준이 70~78%, G20 국가가 83% 정도와 비교시 높지 않은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의 규모로 봤을 때는 크게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채무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점을 우려한다. 특히 내년 발행되는 국고채의 절반 가까이가 적자성 채무라는 점에서 대외신인도 하락과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 확대가 경기 회복과 AI 성과 창출로 이어지면 선순환을 만들 수 있지만, 성과가 지연될 경우 재정위험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이날 브리핑에서 AI 대전환 성공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재정건전성이 확보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유병서 기재부 예산실장은 “성공을 전제로 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다만 소극적 재정 운영과 경직적인 재정준칙 준수가 재정성장률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어 확장재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기재부의 판단이다. 구 부총리는 “소극적 재정 운용이 세입 기반을 또 축소시키고 잠재성장률을 더 낮추고 또 경제성장률을 더 낮출 수 있는 악순환으로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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