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후 전당대회 기간 내내 보여줬던 우클릭 노선을 내려놓고 실용주의 모드로 전환한 가운데 지도부 내 ‘투트랙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장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끌어안는 외연 확장에 나서는 한편, 원외 인사로 활동폭이 비교적 자유로운 김민수 최고위원이 아스팔트 우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장 대표는 취임 후 최고위원회 등 각종 회의를 주재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련한 공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앞서 전당대회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 씨 등 ‘윤 어게인’ 세력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등 강성 당원을 겨냥해 ‘윤석열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야권 내부의 현안에 대해서도 말을 아낀 채 이재명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대여투쟁’에 메시지를 집중하고 있다.
장 대표의 변화된 태도는 인선부터 감지됐다. 당내서 계파 구분 없이 신망이 두터운 김도읍 정책위의장, 정희용 사무총장을 발탁한 데 이어 추가 인선에서도 옛 친윤(친윤석열)계 색채가 강한 인물보다는 능력 위주로 뽑되 친한(친한동훈)계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지도부 인사 자체가 극우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경선 때 ‘내부총질자 청산’을 앞세워 각을 세웠던 조경태·안철수 의원 등 경쟁 주자나 친한계 의원들에 대한 비토 분위기도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반탄(탄핵 반대) 세력을 등에 업고 지도부에 입성한 김민수 최고위원은 연일 강성 발언을 쏟아내며 ‘보수 투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김 최고위원은 전날 윤 전 대통령을 향한 특검 수사에 대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는 악의적인 구속 수사”라며 윤 대통령 내외의 구속 석방을 요구했다. 또 윤 전 대통령 접견이 불허된 후 “2일 다시 신청했다”며 장 대표와의 동행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도부 회의에서도 “윤 내외 석방하라” 등 눈에 띄는 발언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표면적으로 김 최고위원의 돌출 발언에 대해 “합의된 사항은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전략적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장 대표가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자칫 실망감을 느낄 수 있는 강성 당원들은 김 최고위원이 대변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장 대표가 먼저 꺼내기 힘든 주제의 사안들을 김 최고위원이 나서 군불을 피웠다가, 여론의 반응을 지켜본 뒤 지도부가 톤을 조절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김 최고위원이 윤 전 대통령 접견을 추진한 데 대해 장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화답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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