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막을 올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5’의 주인공은 더 이상 TV나 냉장고가 아니었다. 전시장인 메세 베를린 곳곳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공지능(AI)을 입은 스마트글래스가 펼치는 미래 기술의 경연장이었다.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들이 단순한 시연을 넘어 구체적인 가격표와 출시 시점을 앞세워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IFA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 휴머노이드 로봇의 약진이었다. 중국 로봇축구대회 우승 경력으로 유명한 부스터로보틱스의 부스에는 교육용 휴머노이드 로봇 ‘K1’과 ‘T1’이 형제처럼 나란히 서서 관람객들을 맞았다. 눈 부위 센서로 사람을 감지하고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등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자 부스는 금세 인파로 가득 찼다. 이 회사 직원 차오 밍쉬 씨는 “올해 처음 IFA에 참여했는데 로봇 기업의 수와 신제품 발표가 정말 많다”며 “연내 산업용 휴머노이드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혀 로봇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전했다.
독일의 자존심 뉴라로보틱스는 한층 더 진화한 기술력을 뽐냈다. 휴머노이드 로봇 ‘포 애니원(4NE1)’은 쌓여있는 빨래를 색깔에 맞게 스스로 분류했고, 집사 로봇 ‘미파’는 바닥에 떨어진 인형을 자연스럽게 주워 침대 옆 서랍장에 넣었다.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능력까지 선보인 것이다. 뉴라로보틱스는 올해 1월 CES에서 AI 반도체 선두주자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기조연설에 등장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중국 기업들의 가격 공세는 특히 두드러졌다. 대표 주자인 유니트리는 GPT 기반 대화 기능을 갖춘 인간형 로봇 ‘G1’을 선보이며 부스 곳곳에 1만 6000달러라는 가격을 내걸었다. 우리 돈으로 약 2200만 원에 불과한 금액으로, 경쟁사 제품 대비 최대 40%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시장 대중화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전통적인 가전 기업들도 로봇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는 모습이었다. 중국 가전업체 하이센스는 프레스 콘퍼런스 무대에 직접 휴머노이드 로봇을 올리고, 부스에서도 로봇을 활용해 마이크로 RGB 미니 LED TV 등 신제품을 홍보했다. 이는 단순히 관람객의 이목을 끄는 것을 넘어, 향후 로봇 관련 신사업에 진출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 리얼보틱스는 실제 사람의 피부와 외모, 표정까지 닮은 로봇 ‘아리아’를 전시해 기술의 정점을 과시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미래를 그렸다면, 스마트글래스는 인간의 감각과 지능을 확장하는 현재를 제시했다. 지난해만 해도 생소했던 스마트글래스는 생성형 AI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포스트 스마트폰’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며 별도 전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중국 TCL의 자회사 레이네오 부스는 단연 인산인해를 이뤘다. 출시 전인 증강현실(AR) 안경 ‘레이네오 X3프로’를 직접 체험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 제품은 안경알에 직접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기존 카메라와 스피커만 있던 제품들과 달리 눈앞에 펼쳐진 현실 위에 디지털 정보를 띄워준다. 직접 착용해보니 촬영한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영상을 보는 것도 가능했다. 레이네오 관계자는 “올 10월께 1500달러 선에서 출시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혁신 기술 기업들이 모인 IFA넥스트관에서도 스마트글래스 경쟁은 치열했다. 특히 부품 생태계를 장악한 중화권 기업들이 높은 완성도와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유럽 시장을 두드렸다. 대만 스마트글래스 기업 ‘래티튜드52N’은 구글의 AI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통역 기능을 시연했다. 작은 목소리도 정확히 인식하는 5개의 마이크와 골전도 스피커를 통해 중국어를 영어로 매끄럽게 통역해냈다.
스마트글래스 시장의 개화를 앞두고 주변 액세서리 생태계가 먼저 꿈틀대는 모습도 포착됐다. 중국의 키위는 메타 스마트글래스와 호환되는 무선 충전 배터리를 선보였다.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생긴 배터리를 안경다리 끝에 결합해 착용한 상태로도 충전이 가능한 아이디어 제품이다. 키위 관계자는 “메타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며 “XR 기기용 액세서리에서 스마트글래스 생태계로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