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의 이달 미국 출장길이 갈림길에 섰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건설 중인 미국 2차전지 합작 공장 직원이 대거 체포된 후 현대차그룹이 임직원의 미국 출장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내리면서다. 정 회장은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과 미국 자동차 전문지 포럼에서 만나 미래차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이달 11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오토모티브뉴스 월드 콩그레스 기조연설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 행사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미래 전략을 공유하는 자리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와 전동화 전환에 대한 비전을 밝힐 예정이었다.
그러나 연설을 불과 나흘 앞두고 변수가 생겼다. 이달 4일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2차전지 합작공장이 있는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포함한 475명이 비자 문제로 체포되면서다. 현대차는 이날 소속 임직원의 미국 출장을 최소화하고 필수 불가결한 일이 아니면 보류키로 지침을 내렸다.
사실상 그룹 차원의 출장 제한 조치가 내려진 만큼, 정 회장의 미국행 여부를 두고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번 사태가 향후 사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미국 시장 파트너로서 신뢰를 공고히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정 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가 굳건한 현지 사업 의지를 보이고 문제 해결에 나설지, 혹은 추이를 두고 정부 간 논의로 한국인 체포자들이 석방될 때까지 미국행을 미룰 수 있다는 관측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이달 미국행을 확정한다면 기조 연설 전후로 이뤄질 배라 회장과 회동에도 관심이 쏠린다. 양사는 차량 공동 개발, 공급망 관리 등 포괄적 협력을 논의해왔다.
현대차는 그 다음 주인 18일에는 뉴욕에서 ‘2025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가 예정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 도입에 따른 미국 현지 중장기 전략과 재무 목표가 제시될 것으로 기대됐다. CEO 인베스터 데이가 해외에서 열리는 첫 사례다. 첫 외국인 CEO인 호세 무뇨스 사장이 발표자로 나설 예정이었다.
현대차의 이번 미국 출장 최소화 조치는 이달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현대차그룹 합작 배터리 공장인 HL-GA에서 대규모 단속이 벌어진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는 475명의 직원이 불법체류 및 근무 혐의로 체포됐다. 이 중 300여 명은 한국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대부분은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 비자(B1)로 미국에 입국해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전문직 취업 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E2)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자 발급에 수개월이 걸리는 탓에, 단기 출장 형태로 현지 업무를 보는 경우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출장 제한이 장기화하면 미국 내 신공장 건설이나 생산 라인 증설 등 주요 프로젝트의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비자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진 상황에서 현지 파견 인력만으로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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